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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Oct 14. 2020

길 위에서 만난 사람 - 그녀, 서영

발의 평화를 찾아, 몽골 - 열린 의사회와 함께 한 몽골 의료봉사기(2)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떠나는 길은 없다. 씨앗은 가슴에서 움이 튼다. 거기가 가장 뜨겁고 늦게까지 뛴다. 그녀, 서영은 어느 날 나에게 툭 던졌다. “인도에 가자” 언제 내 가슴에 이 씨앗이 던져졌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 길 위에 서게 될 것이다. 떠날 수 있는 계기는 우연히 올 수 있어도 떠나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한 사람과의 마주침, 끌림은 우연히 시작된다. 서영과 내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은 2002년 6월이었지 싶다. 외청에 근무했던 내가 본청으로 전입한 다음 해였다. 회사 이메일로 업무처리를 하다 내가 인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인도’라는 나라 이름 하나로 우리는 마주쳤고 그녀는 나를 끌어당겼다. 서영은 잉걸불처럼 안에 온기가 가득한 여자였다. 그녀가 가진 불의 기운이 나에게 스며들어 서로를 따뜻하게 했다. 누군가의 한 문장에 빠져 그 작가의 전작을 탐독하는 것처럼 서로를 조금씩 탐독하기 시작했으리라. 우리는 강석경의 《인도기행》을 같이 읽었다. 그 후 강석경의 다른 책 《세상의 별은 다 라싸에 뜬다.》, 《내 안의 깊은 계단》을 나누어 읽으며, 일상에서 불온한 반향을 공모했다.


  그녀는 품도 큰 사람이다. 어느 날 그녀가 지인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내 친구야”라고 소개했다. 적이 놀라는 나를 보고 “근데 꼭 언니 같아”라며 찡끗 웃어 보였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이 많다.    


  인도는 찾아 떠나는 곳이다. 지금까지 교육받아온 합리와 이성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며, 이해하기 힘든 세계를 엿보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과 존재의 사유를 찾아가기에 인도는 매혹이 있다. 아마도 불복종의 세계관과 생명에 관한 근원적 탐구가 그 나라의 길거리에 가득할 것이라는 몽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위험한 곳일 수도 있다. 마음이란 당장 변하지 않아도 서서히 완고 해지는 방향성을 갖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인도기행》에서 작가는 “무거운 짐을 진 채로 인도 대륙을 헤매고 다닌 이유는 자신의 생을 사랑함에 있었고 생명의 환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했다. 내 근원을 찾는 일은 자신의 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툭! 던져지는 ‘자유’를 만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인도에 가자’라는 서로의 바람은 자연스럽게 몽골로도 이어졌다. 몽골이 주는 대자연의 생명력과 노마드적 삶, 미니멀 라이프에서 현실적 답을 찾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열린의사회와 자매결연을 맺은 우리 회사에서는 2019년 여름 해외 의료봉사자 8명을 모집했다. 몽골 울란바토르 인근 빈민 구역인 항울 지역과 여기서 6시간 정도 떨어진 헨티아이막으로 가는 두 개 팀 각각 4명씩이다. 망설일 시간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빠르게 지원서를 제출했고 우리는 씨앗을 품었던 사람인지라 최종 모집자에 합격했으며, 같은 팀에 배치되는 행운까지 따랐다. 이제 열세 살, 열네 살이 된 딸들을 열린의사회에 가입시키고 동행하기로 했다. 국내 봉사와 달리 해외 봉사는 회원에게 주어지는 특전이다. 어린아이들이라 망설이는 운영팀을 설득하는 일은 어렵고도 쉬웠다.     


“아이들에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어른들보다 흡수력이 강한 아이들에게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사고 없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돌보겠습니다.” 교양 있는 엄마들과 아이들이라는 걸 전화로 전달하는 일은 땀이 났다.    


 응답은 20시간 후에 왔다. 열린의사회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 큰 희망을 품고 있는 곳(?)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조금 바빠서 응답이 늦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열린의사회를 설득했으니 이젠 우리 아이들을 설득할 차례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아이들에게 ‘선한 동기’가 되어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개인과 단체는 함께 할 의무가 있다.


  몽골 대자연과의 조우는 잊을뻔한 내 어린 날의 추억들을 소환시켰다. 추억은 내 안에 깃든 나만의 치유 법이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류의 조상이 숲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숲에 친근감을 느낀다.” 또, “인류는 별에서 태어났다”라고 했다. 어느 곳이나 삶은 치열하다. 치열하니 위안도 필요하다.    


 ‘숲’과 ‘별’을 찾아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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