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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하라 Oct 14. 2020

우리는 의료 봉사하러 가요

발의 평화를 찾아 몽골 - 열린의사회와 함께 한 몽골 의료봉사기(3)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몽골 칭기즈 칸 공항까지는 3시간 30분이 걸린다. 출국에 앞서 H 출국장에 모인 의료봉사팀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우리 팀의 평균 연령이 가장 높아 보였다. 함께 간 간호사 선생님은 이제 정년이 2년 정도 남으신 시골 마을 진료소장님이시다. 선생님은 자신이 제일 늙은 거(?) 같다며 걱정하셨다. 늙음이 기죽을 일은 아니나 젊은 사람들 틈에서 행여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셨다. 하지만, 나는 연륜의 깊이를 믿는다. 겸손하고 성실한 늙음은 순간순간 빛을 발한다. 


  젊은이들의 높은 웃음소리와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가 듣기 좋다. 젊다는 건 겸손이나 성실보다 도전 의식이 더 어울린다. 낯선 사람들 속에 무심한 듯 서로를 탐색하는 호기심은 젊은이다워 더 예쁘다. 

  비행기 안에서 내 옆에 앉은 학생은 몽골의 고비사막 자유 투어를 위해 친구들과 함께 출발한다고 했다. 유럽이나 미주 쪽도 좋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자신은 오지 여행이 더 좋고 뜻이 맞는 친구들을 인터넷 카페에서 모집해 함께 떠난다고 했다. 그 안에는 친한 친구도 있고 처음 만나는 친구도 있으나 대체로 뜻이 잘 맞아 실패할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낯선 여행지에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여행. 그들은 처음이라 낯설고 설렐 것이다. 실패의 경험이 있다고 해서 자신의 욕구를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도저하게 나아가는 패기에 있다.


  나의 청춘에는 꽤 깊은 열등의식이 있었다. 가난한 부모님에 대한 원망(라떼는 대체로 가난했다), 현실에 순응하다 못해 스스로 먼저 포기했던 선택의 순간들, 가장 예쁠 나이에 내가 예쁜지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더 많은 시간을 노력해야 했고 자신을 코너에 몰아넣어 다그치며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흔들림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더 단단하고 관대한 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선택에 대한 흔들림의 시간이 있으나 나는 조금 더 빠르게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누군가의 눈에는 잘못된 것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내 선택을 존중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의사 6명, 간호사 5명, 약사 2명, 물리치료사 1명, 치과위생사 3명, 자원봉사자 13명은 대한항공 KE867호를 타고 몽골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했다.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 의예과 학생들이었다. 의료지식이 없는 자원봉사자는 나와 서영, 그리고 우리의 두 딸과 그 외 3명 정도가 전부인 듯했다.


  칭기즈칸 공항은 모든 동선이 머릿속에 하나로 그려질 만큼 작고 아담했다. 출구를 찾는데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복잡한 공항이 아니어서 편안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의약품에 대한 통관절차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우리는 공항 출입구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뜨겁던 한국을 떠나온 지 4시간도 안 되었는데 몽골의 차가운 기운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는 두 개의 바람이 분다. 따뜻한 바람과 차가운 바람이 서로 교차할 때 바람은 마치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듯 내 몸을 각각의 온도로 휘감고 돈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계절에 은파 호수공원의 메타세쿼이아 길옆 벤치에 앉아 있으면 마른풀들을 헤집고 나의 이마에 앉았다 가는 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바람은 따뜻함과 차가움을 한 몸에 담아 각각의 기류로 떠나간다. 그 촉각이 너무 그리워 계절이 바뀌는 짧은 시기에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 오래 앉아 있곤 한다. 야속하게도 그 바람은 쉽게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그리울지도 모른다. 어떤 나무들은 그 바람에 꽃을 피우기도 하겠지. 늘 그 길목을 지키고 있는 오래되고 굵은 나무들. 내가 좋아하는 오동나무는 보라색 꽃을 망울망울 피울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온도가 교차하는 느낌. 나는 칭기즈칸 공항에 서서 그 바람을 느낀다.    밤 11시. 몽골의 밤공기가 나의 살갗을 차갑게 감고 돈다. 누군가와 처음 만나는 설렘과 낯섦의 시간. 공항 앞에서 통관절차가 마무리되길 기다리는 3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그렇지 않을까?     


   몽골의 상현달은 작고 맑았다. 내 고향 마당에서 보는 그 상현달과 똑같았다. 의약품에 대한 통관은 생각보다 길었다. 어느 나라나 의약품 통관은 좀 까다롭다고 한다. 해외 의료봉사 자체를 거부하는 나라들도 있단다. 우리가 의료봉사를 하기로 한 헨티아이막은 몽골의 동북쪽에 있는 곳으로 울란바토르에서 6시간 정도 차로 가야 하는 곳으로 밤새 달려야 아침에 도착할 수 있다. 1시간여 지체된 통관절차가 마무리되고 우리는 몽골의 달을 쫓아 헨티아이막을 향해 초원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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