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목하라 Oct 16. 2020

테무진 호텔에서 마추친 수박씨 벌레에 대한 짧은 보고

발의 평화를 찾아 몽골 - 열린의사회와 함께한 몽골의료봉사기

선잠에서 깨어보면 칠흑 같은 어둠에 불빛도 길도 없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자꾸 어둠 속으로 들어 갔다. 사위가 조금씩 그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할 때 잠들었던 몸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초원의 여명은 짧았다. 환해지는가 싶더니 아침 해가 초원 위로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계도 없이 펼쳐진 초원에 소와 말과 양들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간혹 게르가 보이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둘 조용히 깨어나 초원의 풍경에 압도되었다. 아름다웠으나 곧 흔한 풍경이 될 모든 것을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전 8시. 헨티의 테무친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후부터 의료봉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가 머물 헨티의 테무친 호텔은 15층으로 헨티지역에서 홀로 우뚝 선 최고층 호텔이었다. 대부분 건물은 단층이었고 공공건물도 5층을 넘지 않았다. 초원 한가운데 15층이 이렇게 높은 층이라는 것에 놀랐고, 두 번째는 그 건물의 벌레들에 놀랐다.     


  수박씨 벌레와 대면은 호텔이 처음은 아니다.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 검색대를 기어 다니는 까만 수박씨 벌레를 보았다. 심지어는 내 종아리를 기어 다니기까지 했다. 공항 앞에서는 더 많은 수박씨 벌레들이 산발적으로 기어 다니며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열세 살 은교는 그 뜻하지 않은 환대에 “캭캭” 소리를 지르며 화답했다.     


  공항으로부터 무려 8시간을 달려왔는데 호텔에도 수박씨 벌레들이 기어 다녔다. 나중에 들으니 헨티의 동쪽 경계지역 러시아에서 진화를 포기한 큰불이 났는데 그 영향으로 벌레들이 이동하면서 많아졌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평소에는 이렇게 많은 벌레가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듯했고, 다행한 일이었다. 벌레를 혐오하는 누군가는 이 이유로 몽골 여행을 포기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실제로 비가 온 후 3일째부터는 수박씨 벌레가 보이지 않았다. 오자마자 이런 대자연의 순리에 세 번째로 놀랐다. 


  몽골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 테무친 호텔에서 마주친 수박씨 벌레에 대한 단상이 그것이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거나 일상에 쫓겨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공항에서부터 친숙해진 수박씨 벌레가 호텔 욕실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열세 살 딸의 신변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엄마는 벌레들을 휴지로 싸서 변기에 익사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외침은 계속되었다. 침대 위에도 커튼 사이에도 있었다. 욕실의 벌레는 아무리 잡아도 들어갈 때마다 몰려와 있었다. 오늘 밤은 수박씨 벌레와의 동침이 불가피할 듯 보였다.  


 욕실에 앉아 좁은 벽을 기어오르는 벌레를 보며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올랐다. 더불어 봉준호 감독의 불편한 영화 ‘기생충’이 겹쳤다. 벌레와 기생충과 변신, 조합부터가 그로데스크하다. 난, 이런 불편한 것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벌레를 혐오스러워  하는 딸을 가진 엄마는 무기 없이도 벌레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기생충 약은 먹지도 않는다. 먹는다는 건 내 몸에 기생충이 있을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몽골의 테무친 호텔의 욕실 변기에 앉아 생각한 벌레에 대한 짧은 단상에 대해 조금 긴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자 한다.

    

  우리에겐 익히 알고 있는 갑각류 인간이 있었으니,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이다. 좁은 욕실 안에는 몇 마리의 그레고르 잠가가 살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변신의 첫 문장은 이렇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자 자기가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벌레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는 껍데기가 굳은 등을 대고 벌렁 누워있었다.”     


  수박씨 벌레는 사람의 기척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 나도 죽은 듯이 숨을 참았다. 서로의 침묵이 익숙해지면 벌레는 갈 길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열심히 기어가다 귀퉁이에 닿으면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왔다. 그러다 처음의 귀퉁이를 만나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머물다가 또 되돌아 왔던 길로 정신없이 간다. 뫼비우스의 띠가 따로 없다.     


  영화 기생충에서 아들 ‘기우’는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아버지에게 계획을 묻는다. 아버지는 말한다.    


  “가장 완벽한 계획인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나는 아버지 기택의 무책임한 듯한 말에 공감이 갔다. 생에 있어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약속은 깨지는 것이고, 계획은 바뀌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아들 기우가 가짜 졸업 증명서로 고액과외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할 때 아버지 기택은 아주 기쁘게 말했었다.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인간의 계획은 거대한 생 앞에서 변온동물이 된다. 막다가 틀어진 불행 앞에서 기택은 아무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 계획대로 인생은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계획이라는 환상에 소중한 것들을 잃기도 한다. 기택의 무의미에서 사회적 폭력을 생각했다. 자신이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채 개인은 사회적 계획 속에서 길을 잃고 무지는 오직 개인을 탓한다. 


  나는 욕실 변기에 앉아 수박씨 벌레가 몇 번의 방황을 거듭하다 위를 향해 기어오르는 모습을 본다. 얼마 가지 못해 검은 벌레는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그런데 그 떨어진 지점에서 드디어 벌레는 탈출에 성공한다. 다른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더 넓고 다양한 길로.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그레고리 잠자의 놀이를 기억한다.     

 “특히 그는 천장에 매달리기를 좋아했다.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과는 전연 다른 기분이었다. 숨도 자유롭게 쉴 수 있고 가벼운 진동이 온몸에 퍼졌다. 그는 천장에 매달려 매우 흐뭇한 기분으로 방심 상태에 빠져 있다가 발을 떼고는 방바닥에 철썩 떨어져서 스스로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그가 한 마리 벌레가 된 후로 유일하게 ‘흐뭇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인간은 구속된 책임감과 사회가 구획한 길만을 생각 없이 걷다가 한 마리 벌레가 된다. 그 길은 개인의 길처럼 보이나 사회적 방향이기도 하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매일 가는 그 길의 방향을 틀어 보라. 존재는 그 밖에 있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맞다. 몽골의 테무친 호텔 욕실에서 본 수박씨 벌레는 나에게 말한다.     


  ‘천장으로 올라가 봐. 너의 외면이 내면으로 다시 되돌아오더라도 뫼비우스의 띠를 벗어나 봐.’    


 아이러니하게도 그레고르 잠자에게 기생했던 가족들은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고 경제력을 잃게 되자 생기를 얻는다. 그레고르 잠자가 가장 사랑했던 여동생은 저건 그저 벌레일 뿐, 오빠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잠자 부부는 경제적 지원 능력을 잃고 벌레가 된 아들을 버리고 딸에게 기생하기로 한다. 변신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딸의 모습은 잠자 부부의 눈에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다짐해 주는 것처럼 비쳤다.”    


  기생충에서 아들은 지하실에 갇힌 아버지를 구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 그 집을 사는 것’이다. 관객은 기우의 계획에 결국 한숨을 내쉰다. 잠자 부부의 ‘아름다운 계획’에 불안해지듯.   


  욕실 변기에 쪼그리고 앉아 나와 수박씨 벌레는 심오한 이심전심의 마음을 나누었다. (일방적 소통이었나?) 커튼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들이 내 침대에 들어온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밤. 나는 그레고르 잠자의 '흐뭇한 기분'과 기생충의 '무계획'을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먼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선택하는 길을 가야지. 나는 이제 그래도 된다. 지금 행복한 선택이 나를 행복한 미래와 닿게 할 것이다. 난 역시 낭만주의자다. 못 오르는 천장을 향해 오르다 툭 떨어지는 놀라운 경험으로 ‘흐뭇한 기분’이 든다면 행복할 것 같다.                         

이전 03화 우리는 의료 봉사하러 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