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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Jan 08. 2024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떠올리는 사람들

김제형, <노래의 의미>

노래는 너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걸까. 이미 넌 충분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좋다는 말로 모든 걸 표현하는, 그것 밖에는 다른 말은 필요 없는, 노래는 너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 걸까.
난 기타를 메고 멈추지를 않는 기차에 올라타 목적지가 없어도 서운하지 말라는 철도원을 봤지.
난 내 삶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게 참 궁금했는데,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그런 것들은 문제가 안 됐지.
노래는 교환의 가치가 과연 남았을까. 실생활에서 있으면 좋은 것들, 없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들,

사실 노래라는 건 쓸모없는 것에 가깝다. 먹고 마시고 입고하는 일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세상의 쓸모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것 또한 괴로운 일이다.

여전히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이곳엔 많다.
여기까지 데려온 노래 수고 많았어요. 어느새 옆자리에 앉은 나팔수의 그 첫인사.


- 김제형, 앨범 <사치> 중 <노래의 의미> (온스테이지 영상보기)




    내가 음악을 '전공'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본격적으로 공부한 기간은 딱 4년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시간의 무게는 개개인에게 다르게 적용되는데, 나에게 이 4년은 내게 나머지 인생의 세월과 같은 무게를 지닐 만큼 소중하다. 나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음악을 특히나 좋아했고, 또래 아이들처럼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피아노학원을 다니다 그만두었으며, 초등학생 때 바이올린에 관심을 가져 전공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 뒤로 쭉 작곡을 혼자 오선지에 끄적이며 해오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원서를 넣게 되었을 때, 나는 부모님에게 생전 처음으로 뜬금없는 주장을 펼쳤다. 1달간 음대 작곡입시를 준비해서 작곡전공과 영문과에 동시에 원서를 넣고 시험에 붙으면 음대에 가고, 떨어지면 영문과를 가겠다는 그야말로 폭탄발언이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100퍼센트 확신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항상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계획하는 성격인데도 내 능력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확신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국 부모님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성공해 음악대학에서 작곡이라는 것을 전공하게 되었다. 나에게 음악이 간절했던 만큼 음대에서 작곡을 공부하는 동안 정말로 자유롭고 행복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하늘을 나는 행글라이더처럼 훨훨 날아다녔다. 그 4년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삶을 지탱하는 요소 중 가장 크고 단단하다.




    그러나 대학교 4학년이 되어 현실에 부딪히자 졸업 후의 진로가 걱정이 되었다. 과연 내가 음악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인가. 입시를 할 때처럼 확신하지 못했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나 스스로 일어날 용기가 없었다. 결국 나는 교직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지금 시행착오를 거치며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나는 또다시 작곡가가 되고자 머나먼 꿈을 꾸고 걸어가고 있다.

    당시 작곡 공부를 시작하고 현실을 겪으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생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데, 내가 이 일로 먹고살 수 있을까. 지금은 학생이라 안전한 것이 아닐까. 내가 과연 전전긍긍 애타면서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버틸 수 있을까. 고민은 점점 깊어져 갔다. 작곡을 그만두고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수능에 포함되지 않는 음악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김제형의 <노래의 의미>의 가사처럼. 음악을 안 들으면 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학생들에게 만약 이 세상에 음악이 없다면 어떨까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삶이 재미없고 지루하며 사는 낙이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상 음악수업 시간이 되면 평소에 공부도 안 하는 놈들이 자율학습을 요구하고 수행평가를 실시하기도 전에 '쌤, 이거 안 해도 되죠? 딱히 필요 없잖아요ㅎ' 하고 싹 무시해 버린다. 예의 없는 자식들.  

    아직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그들의 말을 되돌려 설명해 준다. 만약 음악이 없다면 우리는 지하철에서 환승역이 왔는지 알아차리지 못해 지나쳐버려 수십 분을 낭비할 것이며, 장례식인지 헷갈릴 정도로 불쾌한 웅성거림 속에 결혼식을 치를 것이다. 또한 너희들이 사랑하는 모든 아이돌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블루투스 이어폰 역시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 노래의 가사처럼 나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떠올리는 사람이다. 세상이 쓸모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것 또한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사람이다. 아무도 노래로 식량을 사지는 않지만, 프러포즈 송을 불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기도 하며, 졸업식에서 다 같이 015B의 <이젠 안녕>을 부르며 우정을 지켜내기도 한다.

    마지막 가사가 내 마음에 남아 토닥토닥 위로를 준다.


여기까지 데려온 노래 수고 많았어요. 어느새 옆자리에 앉은 나팔수의 그 첫인사.




앨범 이름은 <사치>. 김제형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이 노래를 작곡했나 보다. 음악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지만, 이렇게 노래로 공감을 하니까 많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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