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빛 Jan 24. 2024

장례식의 로망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나에게는 장례식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내가 죽거든 소박한 카페를 빌려 하루종일 내가 좋아했던 음악을 연속재생해서 음악을 들으며 나를 기억하고 잠깐동안 추모객들의 마음도 쉬어갈 수 있도록 '음악감상회'를 장례식 대신 열어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싶다. 즐겁고 신나는 재즈, 부드러운 클래식, 비트가 있는 팝, 웅장한 찬송가, 시원한 록 음악 등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음악이 들리겠지만, 그 마지막은 바로 이 음악이 될 것이다.


가장 높은 곳의 슬픔이 쏟아져 끝내 흔적없이 사라지는 음악,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이 세상은 유의미한 한편, 허무하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삶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죽음으로 달려간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로 향해가는가."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하는 질문일 것이다. 이 곡을 들으면 절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이 곡의 끝에 '음'이 점차 사라져 '무음'이 되는 부분에 집중하다 보면 사람이 죽어 세상에서 잊혀가는 과정이 떠오른다. 내 장례식 겸 음악감상회의 마지막에 이 곡을 틀어 나의 정점과 사라짐에 대해 음악으로 들려주고 싶다.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음대 시절 악보 사보 수업시간이었다. 간간히 좋은 음악을 들려주셨는데, 이 곡은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남아있을 만큼 나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혔다. 작곡가 사무엘 바버는 1910년에 태어나 1981년에 생을 마감한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다. 현대의 작곡가이지만 주로 낭만적이며 화성이 조화로운 듣기 불편하지 않은 종류의 음악을 작곡한 음악가이다. 이 곡이 가장 최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2001년 뉴욕에서 발생한 911 테러의 추모식에서 연주되었을 때일 것이다. 슬픔의 절정을 쏟아내는, 이 고독하고 고독한 이 곡으로 조금이나마 희생자의 마음을 느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사무엘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음악 감상)

*이 곡이 처음이라면 영상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듣는 것'을 권한다.


    이 곡의 특징은 리듬과 곡의 속도가 비교적 느리게 진행되는 편이라는 것이다. 리듬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박자의 길이가 긴 리듬을 끝까지 고수한다. 만약 이 곡이 음이 없는 타악기 곡이었으면 8분이  굉장히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재미없는 리듬이 음을 만나 필수적인 요소로 변한다. 느리고 변화가 없는 리듬이 악기들이 최고음역을 얇고 세밀하게 연주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도록 품위를 지켜주며, 슬프고 고독한 발걸음을 연상시켜 주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바로 느린 속도로 점차 상승하여 현악기의 최고음역에서 절정을 찍어 극한을 달리는 선율이다. 이 곡의 포인트 혹은 하이라이트는 이 절정을 향해 느리게 움직이는 선율과 변화하는 화음의 색깔에 있다. 선율은 계단 하나하나를 안전하게 디디며 올라가는 듯 천천히 움직인다. 한 번에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물결을 치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전진한다. 마치 절정을 맞이할 생각이 딱히 없는 듯 무심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샌가 각자의 최고음역까지 도달해 현악기 무리가 소리 내는 높고 가는 선율이 내 마음을 꽉 붙잡고 내놓지를 않는다. 정말로 이 곡의 가장 절정인 부분에서는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고혹적이며 흡입력이 있다. 절정 부분에서도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고 변하는 화음의 빛깔을 느끼면 내가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의 마지막까지 쥐어짜지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이 순간 말고는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외치는 듯하다.

   그렇게 몸부림을 친 뒤 모든 악기가 숨을 멈춘 듯 조용한 순간이 온다. 독일어로는 게네랄 파우제(Generalpause), 영어로는 제너럴 포즈(Generalpause). 'G. P.'라는 약자로 오케스트라 총보에 표시되며, 모든 악기가 갑자기 "얼음!!" 하는 부분을 뜻한다. 이 곡의 절정 중 절정은 바로 극한의 슬픈 선율 뒤에 찾아오는 이 갑작스러운 고요함이다. 그 후 조용히 낮은 음역에서 이어나가다 서서히 작아지며 음이 사라진다.

    나는 사람들이 나의 삶과 죽음을 기리는 시간에 이 곡을 듣고 내 느낌을 함께 하기를 바란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계속되겠지만, 다른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 기억되어 마음을 따뜻하고 즐겁게, 때로는 슬프고 고독하게. 나의 다양한 모습이 음악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너무 크거나 반대로 소박한 꿈일지 모르겠다. 한 번도 이런 장례식을 본 적이 없어 이루어질지 몰라 막연하지만, 진짜로 유언을 이렇게 남길까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뭐 못할게 뭐야. 하하. 무거운 주제에 무거운 음악이라 급히 가볍게 끝내 본다.


오늘도 사느라 수고했다.


이런 음악을 듣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오늘은 내 주위에 변함없이 있는 사람들이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전 06화 기억 속의 어느 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