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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빛 Jan 20. 2024

기억 속의 어느 밤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2021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첫 발령지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숨을 쉴 수 있는 쉼터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어촌 구석의 자그마한 항구 옆의 공간이었다. 나는 꽤 자주 일을 마치고 혹은 저녁을 먹고 그곳에 가서 캠핑의자를 펴놓고 바닷가에 비친 노을과, 결국은 어둡게 변해버린 하늘을 쳐다보며 음악을 듣고 멍하게 앉아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 하늘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따뜻한 주황색에서 붉은색으로, 또 보라색, 파란색, 짙은 남색으로 하늘색이 변해간다. 그리고 반짝반짝 별들이 하나씩 빛나기 시작하고 이 노래 전체에 깔려있는 벌레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동네에 울린다.

    그곳에는 평일 5시 정도에 갔었는데, 거의 나 혼자 있었고, 가끔 스님 한분이 단골손님처럼 찾아와 노란색 기린 모양의 배를 위로 올리는 어촌계 장비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낚시하는 사람이 홀로 찾아와 쪽의자를 펴고 앉아 낚싯대를 훌렁 던졌다. 잔잔한 바닷물을 불태우는 노을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었다. '릴랙스 체어'라고 반쯤 누워서 하늘을 볼 수 있는 편안한 캠핑의자에 앉아있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매일 수위가 조금씩 달랐는데, 수위가 높았던 어느 날에는 날씨가 흐려서 바로 발아래 회색 하늘빛이 물에 비쳐서 은쟁반처럼 바닷물이 은은히 빛났던 것을 잊지 못한다. 바다이긴 하지만 육지로 깊게 들어온 항구였기에 물살은 잔잔했고, 가끔 통통배가 양식장을 지나가면 물살이 일어 '아, 내가 바다에 있구나' 하는 것을 일깨워주곤 했다.


쟁반노래방에 나오는 옛날쟁반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이렇게 물이 가득 차 은빛으로 일렁인다.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음악 듣기​)


    이 곡을 들으면 그때의 여유로움과 어두워진 작은 항구의 고즈넉한 정취가 떠오른다. 나에게 음악은 기억이다. 음악을 들으면 그 당시의 감정, 분위기와 냄새, 배경 소리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기억을 음악으로 간직하는 것은 참으로 낭만적인 일이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언어로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새삼 음악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전에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었는데, 내 피아노 반주를 듣고 음악에 감동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기분이 묘했다. 나는 피아노를 덤덤하게 쳤었다. 나에겐 피아노 반주가 실수하지 않고 정확하되, 너무 튀지 않게 쳐야 하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반주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집중했다. 전문 연주자들도 그냥 담담하게 음악을 해나가는데, 그 담담함이 듣는 사람에겐 감동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음악이라는 건 참 신기하고 오묘하다. 촛불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소리를 없애면 한 순간에 증발해버리기도 한다. 움직이는 '시간'이라는 매체 위에 존재하며, 공기를 진동시키는 물리적인 것을 넘어 우리 마음을 진동시키는 힘이 강하다. 음악은 시간 위에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기억 속에 ’청각적 이미지‘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오늘도 이 곡을 들으며 2021년 여름의 저녁노을과 바닷가의 정취를 떠올려본다.



마음의 휴식처였던 작은 어촌의 항구 옆 구석이다. 한발짝만 내밀면 바로 물속으로 풍덩! 할 수 있을정도로 가깝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어촌계 땅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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