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빛 May 17. 2024

온빛, 나라는 사람

오늘 소개할 자연은 바로 나.

    얼마 전에 프로필을 수정했다. 내가 새로 지은 이름은 '온빛'. 내가 따뜻한 전구색 전등을 좋아해서 지은 이름이다. 글을 쓸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나는 항상 노란 전구빛 아래에 머문다. 새하얀 형광등 아래에서는 차갑고 냉정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전등의 색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감각이 예민한 편이다. 예민한 사람에 대한 여러 책을 읽어보니 미쳐버릴 정도로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이 피곤할 정도로 예민한 편은 맞는 것 같다. 전문가는 나처럼 감각이 예민하고 과도한 생각 때문에 피곤한 사람을 '예민한 사람' 혹은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의 내 일상을 되돌아보면, 잠을 잘 때 시계소리가 거슬려서 방에 시계가 없고, 허리가 옷에 졸리는 것을 못 견뎌해서 밴딩 바지만 입고 다녔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잠에 들 때까지 생각을 계속 물고 늘어져서 스스로에게 지치곤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써서 나 자신이 튀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튀지 않는 어두운 색 위주의 옷을 지나치게 골라 입었다. 내 고유한 색채를 드러내는 방법을 몰랐다. 건강 불안증이 심해 임산부, 아토피 아동 사용 가능 화장품 등 순한 화장품만 사용했다. 가장 심한 것은 병원에 대한 공포였다. 불안이 너무 심해서 주사를 맞으면 바늘이 살을 파고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눈앞이 하얘지고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라식 수술을 받고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수술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


    위에 나열한 것 말고도 수많은 일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한 상황이 몰아치자 결국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곧 부러질 나뭇가지처럼 위태로워진 나는 심리상담의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조금 괜찮아졌다. 불안한 원인을 알게 되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마치 뇌가 부풀 듯 정신적으로 과도하게 활동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조금씩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보면서 생각의 저변을 넓혀나가고 있다.


    예민한 감각 덕분에 음악 중에서도 예술적 감각이 가장 많이 필요한 작곡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해왔는데, 내 머릿속에는 내가 들어왔던 모든 음악들이 녹음되어 있었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편했다. 음악이 단순한 공기 진동으로 다가오는 것을 넘어서 심적인 형체, 색깔로 다가왔다. 모차르트 레퀴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듣고 그 아름다움에 견딜 수가 없어서 눈앞이 하얘지면서 펑펑 눈물이 났다. 예민한 감각은 나를 평생 힘들게 했지만, 나를 예술 속에서 자유롭게 해 준 소중한 날개이기도 하다.




    나의 새로운 필명 '온빛'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빛'을 비추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전까진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돕지...' 하며 나부터 잘살고 보자 하는 마음이 컸다. 위에서 말했듯이 내 마음속 목소리가 너무 커서 누군가를 돌볼 처지가 못되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함께 사는 가족들부터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내 가족, 나아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살펴본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힘이 되는 말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 낯설면서도 반갑다.


    나는 내가 나이 드는 것이 좋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는 것이 새롭다. 말주변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많아진다.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게 되어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겼지만, 그래도 내가 소속된 곳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아직 이런 이야기만 적어도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맺히긴 한다. 많이 외롭게 살았나 보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충분히 들어서 인생을 더 많이 알게 되면 좋겠다. 이제까지의 나를 웃으며 감싸줄 수 있겠지.


온빛. 언젠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친구 도치. 대만 출신으로, 내 서재에서 항상 나를 반겨준다. 글을 쓰는 동안 외롭지 않게 항상 함께해줘서 고마워.


이전 04화 바다, 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