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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 산에 뜬 달 Mar 22. 2023

수력발전인(水力發電人)의
우당탕쾅쾅 수영일지

눈물겨운 수영 초보 탈출기

커버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한겨울 새벽에 수영하는 것은 미친짓이다. 아침 5시 30분 알람에 눈을 뜬다. 일어나고 싶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다. 볼트모트에 맞서는 해리만큼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 결심했어~!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는 순간 후회. 난 후회의 인간이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어젯밤 허물처럼 벗어놓은 츄리닝을 영상을 거꾸로 돌리듯 고대로 다시 입는다. 몇시간 후 입을것을 괜히 벗었다. 입고 잘 걸. 난 후회의 인간이다. 수영가방을 챙겨들고 현관문을 연다. 오마이갓~ 여기는 광복군이 독립운동하던 만주벌판인가요? 한겨울의 삭풍이 따뜻한 이불에 저항하는 건방진 인간을 가차없이 공격한다.

매번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요란한 행차지만, 나서보면 세상은 이미 시작되어 있다. 부산하게 전철역으로 버스정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상품을 진열하고 있는 슈퍼아저씨,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빵집, 간밤의 흔적을 묵묵히 지우고 있는 미화원, 길게 줄지어 늘어서 있는 인력시장 노동자들. 유난을 떨어 민망하다. 조금은 겸손해진다.

겸손도 잠시, 체육센터에 도착해 수영복에 몸을 욱여넣을때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려고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현타가 온다. 난 후회의 인간이다. 흘깃보니 샤워장엔 나같은 사람 2,30명이 집에 뭔가 놓고 온 얼굴로 멍하니 물줄기를 맞고 있다. 미친 짓도 같이 하면 힘이 난다. 저들은 영문도 모르고 나의 동지가 된다. 환복 후 따뜻한 물을 끄면 바로 남극의 한기가 몰려와 온몸의 소름이 다 활성화되는데, 이 상태로 차가운 물에 입수를 해야 한다. 신새벽 일련의 이 미친짓의 정점이자 가장 난도가 높은 일이다. [리빙포인트] 숨을 참고 한번에 뛰어 드세요. 안들리게 작은 소리로 상욕을 하며 입수하면 좀 낫습니다. 이미 물에 들어왔으니 구르는 수밖에 없다. 수영장을 한 10바퀴 정도 영법을 달리하며 뺑뺑이 돌고나면 스위머스 하이(swimmer's high)가 오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열기가 퍼진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보상하기 위해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의 장난으로 '역시 나오길 잘했어. 나는 꽤 부지런한 인간이야. 오늘 수영폼도 나쁘지 않은데~'라며 부끄러움도 없이 자화자찬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수영인(水泳人)이라고 할만하지 않은가.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엄살을 부렸지만 사실 수영이 내 일상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담당해 주고 있기 때문에 수력발전인(水力發電人)이라고 하고 싶다. 거창하지만 써놓고 보니 마음에 든다. 난 이렇게 장대한 스케일이 좋다. 수영은 보통 한 시간 정도 하지만 앞 뒤로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하면 3시간 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마음먹기 쉽지 않다. 매일은 무리고 일주일에 한 2~3일 정도 퐁당퐁당 하고 있다. 수영할 계획이 있으면 미리 즐겁고 미리 활력이 솟는다. 수력발전(水力發電)인 셈이다. 수영하는 일정을 헤치지 않기 위해 트랙의 잔돌들을 미리 치우는 것처럼 일상의 일들을 속도감있게 처리하게 된다. 수영을 하고 나면 쉼없는 팔젓기와 발차기로 뻐근한 근육의 통증, 참았던 숨을 몰아 쉬었을때의 희열, 스스로 목표했던 거리를 완주해냈을때의 대견함등이 보상으로 지급되어 다음 날을 살아갈 에너지로 쓰인다.

수영을 배우고 익힌지 10년정도 된다. 아~ 10년이라고는 쓰지 말걸 그랬나. 10년동안 수영을 하고, 수력발전까지 한다니 각종 영법을 구사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파파파파팟~! 돌고래 같냐구요? 아닙니다. 실망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네가지 영법을 놀랍도록 느린 속도로 겨우 익히고 이제사 물을 즐기고 편안하게 느끼는 정도다. 나는 비루한 운동신경을 가졌는데 그걸 몰랐었다. 수영은 고맙지 않게도 그걸 자각하게 해주었다. 내 몸은 끊임없이 나를 배반하려 한다. 힘들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 포기하면 편해~ 라고 속삭인다. 몸과 싸우고, 물과도 싸워야 한다. 수영을 배우며 신체지능에 대해 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남들이 한 번 듣고 한 번 보면 얼추 따라하는 간단한 것을, 나는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고군분투하다가 어느 날 마치 우주의 섭리라도 알게 된 듯한 충격과 함께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내 수영일지는 시행착오와 헛수고, 기쁨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음파흡~!

초보강습반에 들어가면 풀사이드에 엎드려 발차기를 배운 후 호흡법을 알려준다. 보통 음파 호흡법이라고 하는데 난 이것을 처음 수영배울때 잘 못 이해하고 음~ 하면서 뱉고 파~ 하면서 들여마시는 줄 알았다. 지금 그렇게 호흡을 해보니 일부러 하려고 해도 잘 안된다. 이렇게 어려운 걸 그 시절 내가 해냈다. 그래서 강습날이면 파~와 함께 수영장 락스물을 한 3리터쯤 들여마시고 배가 볼록해져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날 나는 깨닫는다. 음~도 내뱉는 것이고 파~!도 내뱉는 것이다. 파~ 하고 내뱉으며 입가의 물을 날리고 흐~읍 재빨리 들이마시며, 얼굴을 물속으로 돌려야 한다. 그러니까 음파가 아니라 음파흡~! 호흡법이었던 것이다. 쿠구쿵~! 이럴수가~!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나는 수영장 물을 1/5쯤 들이킨 다음에야 겨우 깨달았다. 나같은 몸치들을 위해 용어개정을 시급히 국회에 요구하는 바이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 아까운 수영장 물을 퍼먹고 있다.

과호흡

알고 보면 수영호흡법이라고 다르지 않다. 위에서 별스럽게 어쩌고 저쩌고 헤맨 사람이 쿨하게도 말한다. 물밖에서 숨쉬는 것처럼 내뱉고 들이마시고 똑같다. 코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뱉는 것을 입으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뱉는 것이 다를뿐이다. 초급반 올챙이 시절 허우적거리고 파닥거리다보면 산소가 모자라 당장 죽을 것 같다. 음파흡 음파흡 열심히 호흡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지금 모자란 건 산소가 아니다. 이산화탄소다. 들이마시는 숨에 비해 내뱉는 숨이 많아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지나치게 낮아진 것이다. 이 상태가 과호흡이다. 과호흡이 되면 머리가 띵해지고 호흡을 할때마다 숨이 점점 가빠와 일종의 공황상태가 된다. 난 이 상태를 자주, 오래 겪었다. 과호흡 후유증으로 하루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지나고 보니 참 요란하게도 배우고 익혔다. 용케도 그만두지 않고 지나왔다. 명심할것. 밸런스가 중요하다. 목에 힘빼기. 몸에 힘빼기. 들이쉰만큼 내뱉기. 오버하지 말기.

수영복

처음 구매한 수영복은 남들 시선과 노출이 부끄러워 반소매에 허벅지 중간쯤 길이의 디자인으로 선택했다. 수영도 못하면서 화려한 패턴이나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고 싶지 않았다. 물이 차가우니 몸을 가리는 면적이 넓으면 덜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른것이기도 하다. 배달된 파란색 3부 수영복을 입어보고 나 어때?했더니 같이 사는 남자가 '배운다는게 그레꼬로망 레슬링이었어? 수영인줄 알았는데'라고 해서 등을 세차게 때려줬다. 남자들이 수명이 짧은 이유다. 첫 날 입고 강습을 받아 보니 세상 쓸데없는 걱정을 했구나 싶었다. 아무도 파닥대는 초급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3부 수영복이나 훅 까인 수영복이나 물에 들어갈때 추운건 똑같다. 애매한 길이의 수영복은 물에 들어가니 소매는 감겨서 팔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다리 부분은 눌리면서 위로 돌돌돌 올라가고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는 키가 작아 빙하처럼 목 근처까지 거의 잠겨있기 때문에 입퇴장할때 빼고는 수영복을 남들한테 선보일 시간도 없다. 음 이렇게까지 사실을 적시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지금은 산뜻한 패턴과 색감의 미들컷 수영복을 몇 벌 가지고 있다. 시간을 들여 애써 고른 멋진 수영복은 수영을 더욱 즐겁게 한다. 기능과 목적을 충족한다면 때깔이 고운것이 장땡.

배영

나는 접배평자 네가지 영법중 배영이 제일 힘들고 어렵다. 다른 영법의 방향과 반대로 천장을 향해 물위에 누운 상태로 팔젓기와 발차기를 해야한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배우기 어렵고 쉽게 지치는 이유다. 게다가 호흡타이밍을 잡기도 힘들다. 방향치인 나는 자유영에서 겨우 익힌 협응 리듬을 반바퀴 뒤집었다고 다 까먹고 만다. 남들은 코와 입이 물밖으로 나와 있어 호흡이 쉽다고들 하던데, 나는 남들이 아니다. 남들과 반대로 얼굴이 물속에 잠길때 들이마시고 물밖에 나오면 내뱉는다. 배영을 배울때도 나는 강습료가 아까워 수영장 물을 열심히 먹었다. 꾸준히 연습하지만 나아지지 않는다. 뭔가 잘 안되면 처음부터 다시 하면 좋다. 하나하나 연습해본다. 팔젓기만, 호흡만, 발차기만 따로 따로. 꾸역꾸역.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을 불러내어 단련할 것. 기본에 충실할 것. 뭔가 잘 안되고 있을 때는 잘못된 관성으로 무리하게 나가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갈것.

접영

접영을 열심히 했더니 승모가 자극되어 커졌다. 언젠가 안마를 받으러 가니 어머 어깨가 왜 이렇게 뭉치셨어요. 풀어드릴께요. 집중해서 어깨만 공략하는 통에 아팠다. 아 그거 근육이예요. 뭉친거 아니예요. 수영해서 근육이 생긴거예요. 아 그래요? 여자는 승모근 있으면 좀 그런데~ 필라테스처럼 예쁜 일자 어깨 만드는 운동 하시지. 예쁜 일자 어깨로는 접영을 멋지게 할 수 없다. 승모근은 수영 좀 하는 사람들이 얻는 레벨업 아이템이다. 이걸 몰라주시네. 상관없다. 내가 만든 나의 근육. 나의 승모근은 아름답고 단단하다. 승모근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말것. 감정소모로 근손실 오면 나만 손해.

나만의 리듬과 속도

초급반 시절 강습이 끝나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우와 어쩌면 이렇게 못 할수가. 강사도 신기해하고 나도 내가 신기하다.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에 계속 남는 여고괴담 귀신처럼 오랫동안 초급반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날 허우적 허우적 평영 연습하던 나를 처음 발견했다는 듯 강사가 아니 회원님 왜 아직도 여기 계세요~ 이제 올라가세요 해서 억지로 중급반으로 쫒겨 올라갔다. 중급반에서 접영까지 모든 영법을 배우고도 완성시키지 못해 중급반 지박령이 되었다. 주기가 짧은 수영강사들의 입퇴사를 몇번이나 지켜보았다. 어느 덧 낙오자의 여유로움(이라고 쓰고 뻔뻔함이라고 읽는다)이 생겼다. 아휴~ 강사님 나 못해요. 못하니까 천천히 할래요. 저 신경쓰지 말고 수업하세요. 맨 뒤에서 방해되지 않게 눈치껏 따라갈께요. 내가 시합에 나갈것도 아닌데 조급할 이유가 뭐 있나. 남들 1년에 배울거 난 3년에 배우지 뭐. 그러다보니 어느 새 못하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오예~!(오열한다) 남들 의식하지 말자. 남들처럼 빨리 가려고 출력을 높히다 보면 폼도 떨어지고 리듬이 안 맞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늦는다고 조급해하지 말 것. 우리의 몸시계는 각자 다르다. 자신의 리듬을 완성하고 등속도를 유지할 것. 포기하지 말 것. 뻔뻔해질 것.

마지막으로 약을 팔아야겠다. 수영은 일종의 통증클리닉이다. 수영은 전신근육을 쓰는 운동이다. 모든 동작이 수축과 이완을 교대로 반복하기 때문에 근육을 풀어주는 효과가 좋다. 컴퓨터로 오래 작업을 해야 하는 나는 거북목(그러고 보니 거북이의 목을 가졌는데 왜 그리도 못했을까. 육지거북이의 목을 가진 것인가)에 뒷목과 어깨가 자주 딱딱해져 두통도 잦았는데, 수영이 비교적 능숙해지며 많이 좋아졌다. 근본적으로 무언가 개선되어 통증이 없어진 것일까. 알 수 없다. 격한 운동끝에 오는 마취 효과일수도 있다. 어쨋든 수영은 대충 애매한 자세로는 지속할 수 없다. 온몸을 최대한 열고, 팔을 최대한 뻗어 물을 가져오고, 다리 전체로 물을 누른다는 느낌으로 아래위로 꾸준히 흔들고, 호흡은 편안하지만 깊게. 이 모든 것을 의식하며 4비트 킥으로 리듬을 타며 쭉~!쭉~! 자 수력발전의 시간이다.

작은 꿈이 있다. 저어기 아래 어디든 햇살 따뜻한 남쪽나라 야외풀에서 하루종일 수영을 하고 싶다. 수영을 하다 지치면 썬베드에 작은 좌탁을 놓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다. 몸이 식고 책이 지루해진다 싶으면 다시 따뜻한 풀에 뛰어든다. 꿈조차도 수영을 하는것이니 수영인의 표상이라 할만하다. 그 꿈은 요원하다. 그래도 뭐 괜찮다. 수력발전일기 맨 끝 페이지로 남겨두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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