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국 씨는 섬진강변에서 펜션을 하는 사람이다. 지난해 늦가을 친구들과 지리산에 갔을 때 그의 펜션에 묵었다. 우리는 경상도 화개터미널에 도착해 강 건너 전라도 그의 숙소에 짐을 부려놓고 산책하러 나섰다. 섬진강은 생각보다 폭이 좁고 둔치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날씨탓인지 물색이 검고 짙어 속을 알 수 없다. 강을 따라 걷다 빗발이 제법 굵어져 산책을 포기하고 걸음을 돌려 숙소로 돌아왔다.
아까 체크인 할 땐 밖에 나가 없던 펜션 주인 이영국씨가 반갑게 인사한다. 그는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데 머리가 온통 하얗게 쇠었고 체격이 크다. 순하고 맑은 얼굴이다. 무심코 시선이 가서 보니 허리에 칼을 차고 있다. 놀라웠지만 왠일인지 무섭지 않다. 호기심으로 호들갑스럽게 물어보니 지금 멧돼지 사냥을 하고 왔단다. 자신처럼 총기가 있고, 사냥허가가 있는 사람들은 멧돼지가 출몰할 때 구례군청의 의뢰를 받고 사냥을 한다고 했다. 주인은 라이카라는 사냥개 견종을 두 마리 데리고 있다. 멧돼지 잡는 녀석이라 그런지 짖는 소리가 대단히 맹렬하고 위협적이다. 톱니가 있는 제법 긴 칼을 찬 이 펜션 주인과 저 개들을 마주쳤을 멧돼지가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개들은 밤에도 간간히 컹컹컹 멀리 퍼지는 소리로 짖어댔다.
그는 구례에서 나고 자라 해병대를 다녀온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섬진강에서 새벽에 잡아 올린 참게와 은어를 내는 식당을 해서 평생 생계를 이어왔다. 아이들이 결혼한 후 식당을 정리하고, 부부가 노후를 보낼 요량으로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화엄사 근처에서 펜션을 하는 친척이 성수기에 방이 모자랄 때 빈번히 손님들을 보내 본의 아니게 숙박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부부가 한갓지게 살 때가 되었는데 얼마전 부인이 쓰러졌다. 요양병원에 있는 부인이 걱정되지만, 코로나로 면회도 간병도 안되니 생업을 계속하며 불안과 허무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생면부지 등산객에게 개인사를 풀어낸 게 민망했는지 반달가슴곰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반달곰은 야생에 적응해서 잘 번식하고 있다. 지역산림청에서는 50수정도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자신들처럼 멧돼지 잡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100수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한번은 어미 없이 새끼 곰 몇 마리만 놀고 있는 둥지를 발견한 적도 있다. 언제인가는 멀리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야산에서 지리산 반달곰이 발견되어 요청을 받고 포획하러 간적도 있다고 했다. 지리산이 등산객으로 번잡한 산이어서, 곰들이 놀라 경상도로 강원도로 위험하게 내달리는것 같아 이영국씨는 걱정된다.
섬진강에 사는 수달 이야기로 넘어간다. 수달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수달보호수역에서는 낚시가 금지되어 있다. 우리 눈엔 마냥 귀엽고 영리한 모습이지만 섬진강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밉보가 없다. 자신들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뻔뻔하게 보호수역 아닌 곳으로 넘어와 물고기를 훔친다고 했다. 그물을 쳐놓으면 물고기만 빼내서 먹으면 되지 굳이 그 비싼 그물을 일부러 갈가리 찢어서 물고기를 훔쳐 먹는단다. 수달은 어디가 보호수역인지 모르지 않나요?라는 말을 참는다. 그래도 자신이 젊었을 적보다 수달이 많이 늘었다며, 섬진강이 다른 강 같지 않게 깨끗해서 그런 거 아니겠냐 한다. 자신이 나고 자라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영국씨는 수달이 밉지 않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 경상도라지만 넘나들고 살아왔으니 이곳에서만큼은 지역감정이 없지 않을까? 그에게 이렇게 말하니 어처구니 없어 한다. “모르는 소리입니다. 북적북적대는 장터도 있고, 화개장터라는 유행가도 있고 하니 외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서 이곳만큼 지역감정 깊은 데가 없습니다. 강 건너 사람끼리는 혼사도 안 시켜서 예전엔 눈 맞아 밤에 몰래 도망가다 배가 뒤집혀 죽은 사람이 동네마다 있었어요. 선거철이면 강을 사이에 두고 빨간색 파란색으로 나뉘어 확성기 소리가 어지간히 시끄러운 게 아닙니다.” 모든 경계에선 꽃이 핀다고 하더니 그건 땅의 이야기이다. 깊고 검은 물로 나눠지면 꽃을 피우지 못하고 각자 섬으로 존재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TV속 기상리포터가 높은 톤으로 지리산의 때 이른 눈을 보도한다. 문득 구례사람 펜션 주인 이영국씨가 생각난다. 눈이 내리고 먹을것이 줄어들면 멧돼지가 내려온다는데, 사냥개를 앞세우고 산으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달곰 새끼들이 궁금해 그 둥지를 멀리서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지켜본 후 신중한 걸음으로 뒷걸음질치는 모습의 그가 떠오른다. 수달들하고 투닥투닥 물고기를 다투며 새벽녘 섬진강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을지도. 부인의 병세가 궁금하다. 부디 경과가 좋아져 섬진강 옆의 - 오래 살 집이니 견고하고 단단하게 지었다는 - 그 펜션으로 돌아와 부부가 노년을 평온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그 펜션에 가면 그가, 그의 백발처럼 하얀 웃음을 지으며 맞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