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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 산에 뜬 달 Mar 20. 2023

'나'로 '같이' 살기

<서평> 두 사람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 그림 / 이지원 옮김

처음에 작가의 이름을 접하고 이보나? 영낙없이 한국이름이라 혹시 고려인인가 생각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IwonaChmielewska는 폴란드 토루인에서 태어나 코페르니쿠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30권이 넘는 어른과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다.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는 자기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을 직접 만들면서 그림책 창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표지는 다소 기괴하다. 반대방향으로 마주 붙은 얼굴 모양의 거대한 풍선이 집을 들어 올려 어두운 밤하늘 어딘가로 가고 있다. 얼굴은 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상대방쪽을 보지 못한다. 한쪽이 인도할때는 그저 믿는 따라 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째 나아가는 방향에 있는 얼굴은 눈을 감고 있다. 어떻게 되려나.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살풋 기대와 걱정이 일어난다.

두 사람의 회화 기법은 르네 마그리트를 연상시킨다. 얼굴 모습의 창에 시계나 조명, 새나 구름이 눈을 대치한다. 사람의 모습을 한 낮이 문으로 들어오면, 밤이 다른 문으로 나간다. 책이 초현실적인 상징으로 가득차 있지만 어린아이와 같이 읽어도 어렵지 않다.  손으로 짚어가며 이건 뭘 뜻하는 걸까 하루종일 아이와 이야기하고 싶다.


'두 사람'은 고유한 개별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두 사람과 그 두 사람사이의 연결된 모습을 다양한 형상으로 그리고 있다. 섬처럼 완전히 나누어져 있는 관계가 있고, 마주한 벽이 되어 한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모습도 있다. 꽃과 줄기, 돛과 돛대처럼 서로 떼어낼수 없어 비로소 둘이 있어야 완성되는 관계도 있다. 낮과 밤처럼 양립될수 없는 관계도 있다. 자전거의 양바퀴나 책의 앞 뒤표지처럼 단단히 서로 연결되고 상호 의존적인 모습도 있다. 다소 채도가 낮은 차분한 색상과 초현실적인 기법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은 함께여서 더 쉽고 함께여서 더  어렵습니다. -


크기도 다르고 디자인도 다른 여성쟈켓 반쪽과 남성쟈켓 반쪽이 울고 웃는 단추로 앞섶이 여며져 있다. 우스꽝스럽고 불완전해보이는 모습이지만, 한편 용하기도 하다. 반쪽이가 온쪽이가 된것이니까 추워도 바람이 불어도 걱정이 없겠다. 



- 두사람은 드넓은 바다 위 두 섬처럼 함께 살아요.

태풍이 불면 함께 바람에 휩쓸리고

해질녘 노을에도 같이 물들지요.

하지만 두 섬의 모양은 서로 달라서

자기만의 화산, 자기만의 폭포,

자기만의 계곡을 가지고 있답니다.- 


사람의 얼굴을 한 거대한 섬 두개가 바다에 떠있다. 두 섬은 바다의 변화를 같이 겪지만 자기만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지형을 간직한 채 거리를 두어 적당히 떨어진 섬. 우리는 그런 존재다. '가족은 운명공동체'라거나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존재로서의 개별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삶은 거친 파도만 가득한 막막한 바다일뿐이다. 



첫장 쟈켓 그림의 이미지가 선명해 선입견을 갖게 된 나는 부부관계를 말하는 책인가 하고 읽었지만, 자세히 보면 두 개체의 성을 구별할 수 없다. 모녀나 형제, 남매, 친구, 부부등 가까운 어떤 두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다. 이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 네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짝지와 나의 창문은 생긴 모습도 다르고 보는 각도도 다르고 심지어 나 있는 방향도 다르다. 작은 녀석의 시계는 어질어질하게 빠르게 돌아가고, 큰 녀석은 느릿느릿 천천히 가서 멈춘건가 하고 가끔 흔들어 보아야 한다. 한편 짝지에게서 지붕을 같이 받치는 고단한 벽의 모습을 본다.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전거의 양쪽바퀴처럼 성실한 모습을 본다. 우리가 돛대라면 아이들은 바람을 한껏 받아안는 돛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아이와 어른은 꽃과 줄기와도 같은 존재다. 또한 서로에겐 낮과 밤처럼 절대 양립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예전에는 그것이 속상해 다투기도 하고 조율해보려고도 했으나 이제는 그냥 두어야 한다는것을 안다. 억지로 맞추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연결된 존재,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특히 갈등이 있는 순간에는 더더욱
서로가 하나뿐인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존중할 것.


'두 사람'과 함께 작가의 다른 그림책도 빌려왔다. <블룸카의 일기>, <작은 발견>, <여자아이의 왕국>, <시간의 네방향>, <눈>등의 작품이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세계를 씨실과 날실의 세계라고 표현했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 '실'을 이용해 작업한 그림책이 많다. 다양한 옷에서 잘라낸듯한 직물들과 잡지를 오려 붙이거나, 책에 구멍을 내어 표현한 기법도 있다. 작가 인터뷰에서도 이번엔 어떤 기법을 시도해볼까 자신조차도 기대가 된다라고 쓴 글을 보았다. 작가의 에너지와 창작욕을 보면 앞으로도 멋진 그림책을 선물로 받을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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