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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Sep 12. 2023

생리통이 없어질 수 있을까요.

복약안내서의 말 _006.

     저는 늘 환자들에게 생리통은 없어질 수 있다고 말하지만 다들 좀처럼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처음 생리한 이후로 한 번도 없었던 적이 없는데요."

     "저희 엄마도 있었고 저희 언니도 있고 저도 있으니 저희 집은 유전이에요."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있긴 한데 갓생이죠 뭐. 전 이번 생은 망했어요."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생리통은 잘 치료하면 없어질 수 있고 체질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어도 유전자에 아로새겨진 저주 같은 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려보지만 마주한 눈빛에서 '에이 설마'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의심이 크면 클수록 그 뒤에 '된다면야 제발'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저는 진짜진짜징짜 진심입니다.


그래서 생리통이 정말로 없어질 수 있다고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생리통이 왜 생기는지, 어떻게 심해지는지 설명해야 하겠지요.




    우리의 자궁은 튼튼한 근육질로 이루어진 작은 주머니입니다. 질부 끝에 연결된 자궁경부, 자궁체부로 이루어지는데 자궁체부 안쪽면 전체에 자궁내막조직이 멜론의 속살처럼 깔려있고 단단한 과육이 있는 자리에 두툼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지요. 자궁의 근육은 인체에서 가장 탄력이 뛰어난 조직 중 하나입니다. 보통 어른의 주먹만 한 자궁이 만삭 때 산처럼 늘어나고 출산 후 다시 회복되는 과정은 봐도 봐도 놀랍지요.


생리는 자궁 내막이 탈락해서 자궁을 빠져나오는 과정입니다. 몸은 배란을 준비하면서 혹시 모를 임신에 대비해 자궁 내막을 부풀립니다. 배란된 난자가 생명을 다하는 48시간 내에 정자를 만나지 못하면 준비된 내막도 효용이 없어지니 둘이 함께 몸 밖으로 나오게 되는 거지요. 이들이 몸 밖으로 잘 빠져나가야 다음 배란이 또 준비될 수 있기에 이 배출의 과정은 중요합니다.


생리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출산과 똑같습니다. 자궁 속에 담고 있던 무언가를 근육의 운동을 통해 몸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이지요. 다만 생리는 한 달 동안 충혈된 내막조직과 혈액을 난자와 함께 내보내는 것이고 출산은 자궁 속에서 40주 동안 키운 태아와 태반, 태반을 지지하고 있던 자궁 내막 조직을 내보낸다는 차이뿐입니다. 실제로 심한 생리통은 출산할 때처럼 요통, 골반통뿐 아니라 다리까지 저린 하지방사통 동반되기도 하지요.


출산은 반드시 엄청난 통증을 수반하지만 생리통은 기절할 만큼 심한 사람부터 1도 없는 사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합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요?




    두꺼운 고무로 만든 주머니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속은 비어있고 입구는 아주 작은데 우리는 지금부터 그 주머니 속에 무언가 넣었다가 그것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작업을 반복해야 합니다.


짜내기 위해 들어가는 힘만큼 자궁에는 통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요.


물이나 주스처럼 맑은 액체를 넣으면 구멍을 아래로 하고 슬쩍 힘만 주어도 내용물은 깨끗이 빠져나갈 겁니다. 꿀을 넣으면 어떨까요? 나가는 데 시간이 걸리고 조금 더 힘을 주어서 짜야 완전히 비워질 겁니다. 꿀에 과일 건더기 같은 이물질이 섞여 있다면? 힘주어 누르는 걸로도 부족해 비틀어 쥐어짜고 탈탈 털어야 겨우 내용물을 비울 수 있습니다.


생리통은 자궁이 내용물을 비워내기 위해 수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련성 통증입니다. 자궁내막을 채우고 있던 혈액이 맑고 깨끗하며 덩어리가 없다면 생리는 그냥 주르륵 흘러나오면 끝이지만 끈적이고 덩어리가 지는 상태면 어떻게든 내용물을 내보내려고 자궁은 근육을 강하게 쥐어짜는 과정에서 뒤틀며 경련하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생리통을 호소하는 환자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이겁니다. “배가 엄청 아프더니 큰 덩어리가 쑥 빠져나오고 나서 그다음부터 통증이 가라앉았어요.”


생리혈이 원래 끈적하고 덩어리가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진행해 보면 가장 많이 듣는 피드백이 피가 맑아졌다, 색이 밝아졌다, 끈적이지 않는다, 덩어리가 줄었다는 거지요. 여러 사람의 생리혈을 색깔과 탁도, 점도로 나누면 생각보다 다채로운 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각 특징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지만 우선 맑고 밝고 건더기가 없는 출혈이 건강한 상태인 것은 분명하지요. 


또 다른 경우는 주머니의 기본적인 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무 주머니가 애초에 부드럽고 유연하지 못해 딱딱해져 있다면 부드러운 주머니보다 더 힘을 주어 눌러야 할 겁니다. 딱딱하고 단단한 주머니에 계속 힘을 주게 되면 주머니는 깨어지거나 찢어지는 충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자궁을 이루는 근육이 어떤 이유로 경직되어 있거나 생리 양이 과도하게 많아 자궁 근육 속의 혈액까지 다 빠져나가 허혈상태가 되는 경우에 생리통이 심해지는 이유이지요. 




     생리혈이 끈적해지고 뭉치고 덩어리 지는 이유를 ‘어혈’이라고 합니다. 어혈은 원래 혈액이었던 물질이 제 기능을 잃고 노폐물이 되어 혈관 내부에 남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혈은 혈관을 막아 순환을 방해합니다. 혈액이 잘 공급되지 않은 근육은 뻣뻣해지고 경련을 일으키기 더 쉬워지겠지요. 그럴 때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량을 늘리면 혈관을 막고 있던 어혈이 빠져나가 순환이 회복됩니다. 생리통이 심할 때 배를 따뜻하게 해 주면 좀 나아진다고 느끼는 이유이지요.


어혈이 많은 사람도 증상이 심하지만, 어혈이 조금밖에 없어도 증상이 심할 때가 있습니다. 혈액의 절대적인 양이 너무 적어 얼마 안 되는 어혈도 처리를 못하는 경우지요. 이런 상태를 '혈허'라고 합니다. 통증이 심해 진통제도 듣지 않을 때 수액을 맞아야 나아지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어혈과 혈허는 생리통을 이루는 두 가지 원인입니다. 상태에 따라 어떤 것이 우세한 지는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찜질만 해주어도 낫지만 심한 경우는 그 정도로 어림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통제를 먹으면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누군가는 진통제를 먹어도 아주 심한 통증이 견딜만 한 통증으로 줄어들 뿐입니다. 통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무겁고 찌뿌드드하고 밑이 빠질 것 같고...)은 아예 줄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경제까지 먹어야 하고 다른 사람은 먹는 약으로는 조절이 안되어 응급실에 실려가 무통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증상이 얼마나 심하든, 얼마나 오래가든, 기본적으로 해야 할 치료는 이 두 가지를 개선하는 일입니다. 치료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얼마나 강한 치료로 접근해야 하는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생리통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치료할 때는 0이 목표가 아니라 20~30% 정도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현실적인 치료 기간을 정하지만 저는 끈기를 가지고 치료하면 거의 0에 수렴할 정도로 줄어든다고 믿고 있습니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관리의 방향을 안다면 도로 나빠지지 않고 유지하게 할 방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선생님의 빙의하여 읊어보는 슬램덩크의 명대사


그러니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포기하는 그 순간이 바로 게임 끝이니까요. (feat. 슬램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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