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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Sep 05. 2023

치료는 치료, 관리는 관리.

복약안내서의 말_ 005. '몸에 관한 뻔한데 중요한 얘기' 삼부작

하나, 건강하다는 것의 의미.

둘, 몸은 변화를 싫어합니다.

셋, 치료는 치료, 관리는 관리.




     '자기 관리'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개인이 브랜드가 되고 채널이 되는 세상인 만큼 스스로의 시간, 돈, 생활, 멘탈을 관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남다른 자기 관리 비법만큼 솔깃한 화제가 있을까요. 저도 인스타 피드를 무심코 올려보다가도 감정을 관리하는 법,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법 같은 게시물을 보면 저도 모르게 클릭을 누르게 되거든요.  


'건강관리'는 그중에서도 단연 선두주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건강한 식습관, 꾸준한 운동, 주기적인 건강검진 등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관리는 현대인의 필수덕목입니다. 하고 있든 하고 있지 않든 그 가치를 폄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믿는 만큼 몸에 들고나는 모든 것에 저보다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꾸준하게 쌓아온 좋은 습관이 무시무시한 저력을 발휘하는 것도, 반대로 천천히 쌓인 나쁜 습관이 몸의 균형을 쉽게도 무너뜨리는 것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모든 치료의 끝에는 반드시 양호한 예후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 관리의 지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다만 때로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생활의 관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거든요.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의 지속된 시간이나 심각한 정도과 상관없이 체질에 맞게 식단을 관리하면, 운동을 시작하면,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믿음을 가진 분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이 분들은 진료를 보러 오시면서 스스로의 상태에 대한 자가 진단을 내려서 오십니다. 체중이 늘어난 건 제가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입니다. 설사가 잦은 것은 제가 매운 음식을 먹거나 야식을 먹어서 그렇고 안 먹으면 괜찮아요. 쉽게 숨이 찬 건 유산소 부족이에요. 다 제가 관리를 잘 못해서 그래요. 


요즘 분위기 거의 운동하지 않은 자 유죄


실제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근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인이 갑자기 1년 사이 체중이 10kg나 늘었다면 갑상선 기능의 이상일 수 있습니다. 물 같은 설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면 과민성대장증후군일 지도 모릅니다. 계단만 올라도 이상할 정도로 숨이 찬다면 빈혈이나 심장성 천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적은 확률이라도 '그냥 좀 떨어진 컨디션' 그 이상의 문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는 나와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객관적이기 어렵습니다. 나 아닌 다른 몸으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상인지 이상한 건지 비교하긴 더더욱 쉽지 않지요. 관리할 때는 열심히 관리하되 관리만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키우기 전에 막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운동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신뢰는 거의 종교적입니다. 운동을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 느껴질 때가 있어서 놀라곤 하거든요. 믿습니까!!



운동은 무척 중요하고 삶의 많은 것을 바꾸지요. 저도 일주일에 두 번의 필라테스와 한 번의 등산을 어지간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에는 귀찮아서도 힘들어서도 죽을 뻔했지만 습관으로 자리 잡은 뒤로는 체력이 올라오면서 생활에 대체불가한 탄력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모든 경우가 다 같진 않습니다. 피곤해도 운동을 하고 나면 오히려 피로가 줄고 한층 가벼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이 운동해야 체력이 는다고 해서 억지로 운동을 하긴 하지만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소진되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수십 년을 걷고 또 걸어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다던 허리 디스크 문제를 극복한 저의 아버지 같은 분도 있지만 운동 중독에 근육질의 몸을 갖고도 목과 허리의 불균형이 심해 고질적인 통증을 호소하는 필라테스 강사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치료를 통해 몸의 균형을 먼저 회복하고 그 후에 운동으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운동에 대한 신뢰가 너무 커지면 모든 문제를 운동으로 해결하려고 하게 되지요. 특히 운동을 많이 하신 분일 수록, 운동으로 몸을 푸는 데에 자신이 있는 분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합니다. 문제는 잘 모를 때보다 자신이 자만이 될 때 크게 터지지요. 지금 그 경계를 밟고 서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치료'와 '관리'에 대해 제가 나름대로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치료는 나빠진 상태를 원래의 건강한 상태로 끌어올릴 때 유효합니다. 
관리는 현재 상태를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물론 치료에 관리까지 더해지면 기울기는 더 가파르게 상승하겠지요. 


물론 꾸준하고도 성실한 관리를 통해 나빠진 상태를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더디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지요. 최근의 많은 질병은 생활 습관을 통해 오기 때문에 관리를 통해 몸을 회복하려면 몸이 나빠지게 된 습관은 철저히 줄이고 좋은 습관을 그 위에 쌓아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몸이 나빠진 요인은 생활 속의 불가피한 요소들이라 줄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받는다고 일을 그만둘 수 없고, 체력이 달린다고 육아를 때려치울 수도 없고, 혼자 살면서 5대영양소를 잘 갖춘 건강한 식단을 매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잖아요.  


몸을 회복한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적극적인 치료는 밑이 빠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물을 채우는 과정이지요. 일단 물을 어느 정도 채우고 나야 밑이 덜 빠지도록 조절할 힘도 생기고 생활 습관을 교정해 남아있는 에너지를 유지할 여력도 생깁니다. 관리가 진짜 힘을 발휘하는 건 그 이후입니다. 


'자기 관리'라는 키워드 뒤에는 거대한 시장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높아질수록 그러기 위해 필요한 정보, 도구, 시스템은 더 확실한 돈이 되지요. 자본으로 키워진 과잉의 세계에서 어디까지 믿고 무엇을 활용할지 결정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자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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