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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Oct 09. 2024

빚과 대출, 그 미묘한 차이

돈, 빛, 대출에 관한 생각 : 남자

'빚'이라는 말은 어딘가 모르게 어둡다. 무언가 하지 말아야 할 행위를 한 듯한 꺼림칙함이 느껴진다. '꾸어 쓴 돈'이라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 의 일부 -에서는 일종의 궁상맞음도 느껴진다. 반면 '대출'이라는 단어는 깔끔하다. "이것은 비즈니스 관계야" 라며 선을 긋는 느낌이다. 이러한 공적인 느낌은 '돈을 빌리는 행위'와 '돈을 빌리는 사람'을 구분해 준다. 덕분에 돈을 빌리면서도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일으키다'라는 동사와 어우러질 때면 무언가 나도 같이 일어설 것만 같은 진취적인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두 단어의 뉘앙스 차이만큼이나 '돈 빌리기'에 대한 우리 부부의 시선도 다르다. 아내는 '빚'을 싫어한다. 안압지를 헤엄쳐 다니는 커다란 쥐보다 더 무서워한다. 얼마 안 되는 학자금 대출에 악몽까지 꾸었다고 하니 '빚'에 대한  그녀의 공포를 짐작할 만하다. 나는 다르다. '대출'을 철저하게 회계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자산은 부채 플러스 자본. 즉, 돈을 빌리면 부채가 커지며 자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자산이 늘어난다는데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런 독특한 관점을 갖게 된 것은 단지 경영학을 전공해서만은 아니다. 아마 어려서부터 '대출'에 익숙한 영향일 것이다.


          사실 우리 집은 '빚'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중학교를 안 보내준다고 해서 서울로 상경한 아버지와 고등학교 때 외할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시며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어머니가 만났으니 형편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시면서 연봉의 몇 배나 되는 빚을 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빚'은 우리 가족과 함께 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도, 아버지께서 실직하셨을 때도, 내가 대학을 갔을 때도 돈을 빌려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내 명의의 '빚'이 생긴 것은 서른 살 즈음이었다.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던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어려움을 겪으며 말도 안 되는 이율의 대출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좀 알아보니 나는 몇 배나 낮은 이자율로 몇 배나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고민 없이 대출을 받았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마치 상경한 드라마 속 주인공이 서울에 큰 집을 사서 시골에 있는 가족들을 불러들인 그런 뿌듯함이었다. 그 후로 나는 '빚' 대신 '대출'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던 거 같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두 번째, 세 번째는 쉬웠다. 점점 자신감도 붙었다.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나는 평균 이상의 사람이다'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이 또한 대출의 명분이 되었다. 평균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시장에서 돈을 빌려 평균 이상 인 나에게 투자한다면 이자를 넘어서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논리였다. 이론적 기반까지 확보한 나는 거침이 없었다. 겁 없이 돈을 빌렸고 두려움 없이 나에게 투자하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아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뒷받침할 만한 연봉을 받았기에 차입금이 그다지 늘지는 않았다는 정도였다.


          근근이 유지되던 대출 잔액은 아내와 함께 한의원을 시작하게 되면서 폭발적으로 늘게 되었다. 원흉은 나였다. 마음이 급했다. 나의 거창한 계획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자영업 딱지를 떼고 사업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모가 필요했다. 한의원은 확장 일변도를 달렸다. '처음엔 규모, 비용절감은 그 후에'라는 족보도 없는 마음속 캐치프레이즈에 따라 끊임없이 확장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으나 대출금도 늘어만 갔다. 아내는 또다시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찾아왔다. 우선 위기를 넘어서야 했다. 재무 출신의 능력을 보여줄 때이기도 했다. 돈을 빌렸다. 그땐 잠시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몇 년 간 전 국민이 마스크를 써야 했다. 대출총액은 이미 내 마음속 선로를 한참 벗어나 심리적 마지노선에 다가가고 있다. 이자율이 높아지며 이자 부담도 커졌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나도 겁이 난다. 그리고 다시 '대출' 대신 '빚'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나는 최근에 건물을 사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돈을 왕창 빌려 내 자리에서 아내의 한의원을 운영하게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그때까지는 골프도 끊고 10년 넘은 차도 바꾸지 않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아마 매년 오르는 임차료와 점포주의 횡포에 지친 듯하다. '빚'은 어찌 보면 고마운 존재이다. 그 덕에 가족이 살아갈 수 있었고 대학을 가고 결혼도 하고 사업까지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꿈까지 꾸고 있다.


나는 오늘도 '빚'이라는 글자에 마음속으로 점을 하나 찍어 '빛'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갑자기 '빚'이라는 단어가 희망차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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