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위기, 동업의 위기 : 여자
동업을 말리는 어떤 글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동업은 사업이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문제지만 잘 안될 때가 진짜 문제다.'
사업이 잘 되면 '나만 열심히 하고 쟤는 프리라이딩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에 억울해서 싸우고, 잘 안될 때는 서로 돈이 묶여 있기 때문에 관두지도 못하고 끝끝내 서로의 밑바닥을 본다는 겁니다.
부부가 같이 사업을 할 때 좋은 점은 이미 우리는 경제 공동체라는 겁니다. 돈을 벌면 니 거 내 거가 없고 '우리 거'로 귀속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잘 되면 지분다툼을 하는 대신 같이 멋진 노후를 그리면 그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왜 나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라는 생각이 아주 안 드는 건 아닙니다. 이것이 함정이다!
부부가 같이 사업을 할 때 나쁜 점 역시 이미 우리는 경제 공동체라는 겁니다. 따로 일할 때는 하나가 망해도 다른 하나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는데 동업으로 이미 공을 한주머니에 담아버렸습니다. 사업을 그만두어도 부부는 그만둘 수 없기에 일이 잘 안 풀릴 때 우리는 서로 더 조심해야 했습니다. 늘 마음처럼 되는 건 아니었지만요.
개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야심 차게 공격적으로 운영하던 시기였습니다. 개원하자마자 상표권부터 등록하고 버는 돈은 족족 재투자해 공간과 직원을 늘려갔습니다. 남편은 따로 사무실까지 내며 브랜드와 사업화를 꿈꿨습니다. 공용공간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점포를 추가로 계약해 확장공사를 시작했는데, 새 공간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이윽고 팬데믹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위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재앙이었습니다. 끝나려나 끝나려나 하며 꼬박 3년을 이어졌지요.
아직 철들지 못한 자영업의 맛은 일희일비라서 오늘 잘 되면 웃었다가 내일 또 잘 안되면 금세 불안해하곤 했습니다. 남편은 나름대로 엑셀까지 만들어 재정 상태와 계획을 설명해 주었지만 숫자라면 듣고도 매번 까먹는 저를 보고 관심이 없다며 폭발하곤 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진료에 처방에 복약안내서에 직원 교육에 야근까지 해 가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욕을 먹으면 세상 억울한 생각이 들어 화병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럴 때면 온갖 편협한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지요. 뭐야, 내가 왜 이런 욕을 먹고 있어? 사업은 자기가 다 벌여놓고!! (사실 의논해서 같이 결정해 놓고) 일을 상황에 맞춰서 벌여야지, 왜 자기 능력을 과신해?? (제가 응원해 놓고) 핵심적인 일은 내가 다 하는데 왜 맨날 나한테 뭐라그래? (저도 엄청 뭐라고 했으면서) 나 없이 이 사업 시작도 못했을 거면서! (저도 혼자서는 이렇게 못하긴 합니다만)
위기가 닥쳐온다고 서로 물어뜯기 시작하면 끝입니다. 일단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상대라서 대충 휘둘러도 한 방 한 방이 치명타고 대충 맞아도 내상이 심하거든요. 한 번 나가떨어지면 그다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 자체가 하기 싫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작은 자영업은 대표가 기죽어 있으면 그게 업장 전체에 묘하게 티가 나더라는 겁니다. 팬데믹 3년은 우리가 그걸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동기 결혼식에 갔다가 함께 졸업한 남자 동기 중 하나가 몇 년 사이 돈을 많이 벌어 서울에 재개발이 확정된 수십억짜리 비싼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원래 감각도 실력도 체력도 뛰어난 동기였지만 아무리 경기가 안 좋다 해도 역시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잘하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와 이 소식을 남편에게 전할까 말까 하다가 무심한 척 '걔가 그랬다더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 동기를 알고 있었던 남편은 역시 크게 동요하더군요. 그 얘기를 들은 후로 며칠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우리의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곤 했습니다. 출근하려는 나를 붙들고 그 동기가 어떻게 잘될 수 있었는지 밤새 분석한 내용을 들려주기도 했지요.
남편의 스트레스는 아마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그럼에도 우리는 왜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했나에 대한 자기반성이 뒤섞인 결과였을 겁니다. 그 예민한 반응이 내 친구에 대한 질투나 나만을 향한 질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날카로운 말에 다치거나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꼭 비싼 아파트 사고 건물 사야 성공한 건 아니지 않나. 나도 돈이 싫은 건 아니고 오히려 돈 너무 좋지만 일의 목표라는 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않나.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지 않나.
두 사람이 완벽히 같은 목표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각자가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상황이 좋을 때는 서로의 추구미가 조금 달라도 큰 문제가 없지만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모든 문제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게 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완벽한 합의에 이르는 일은 불가능한데도 우리는 자기주장만 하고 서로 양보가 없다며 다투곤 했습니다.
올해 우리의 작은 사업은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고 지금은 그 위기를 천천히, 그러나 무사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덩치를 줄이고 불필요한 사업들을 정리하면서 핵심만 남겨 선택과 집중을 하는 중이지요. 그동안 또 얼마나 피 터지게 싸웠냐고요? 이상하리만치 덜 싸웠습니다. 그때 우리를 보며 깨달은 게 있습니다.
아, 진짜 위기가 닥치면 공공의 적을 향해 돌진하는 전우가 내 동업자 하나뿐이구나. 그동안은 위기가 아니라 그냥 느긋하고도 격한 의견의 교환 정도였구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것 재고 저것 따질 것 없이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쟤가 나를 서운하게 하고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구나. 험난한 가시밭길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죽는 거구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나니 나아갈 길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래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는 건가!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더니 맞말이었어! 역시 옛말은 뻔할수록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까불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적어도 우리 둘 다 지금 여기가 목표가 아닌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위기는 언제든지 또 오겠지요. 다시 다가올 위기는 좀 더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향후 10년 정도는 부디 코로나 같은 거대한 위기는 아니 오기를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