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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Oct 12. 2024

프로 야근러와 백수

: 남자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뒷산으로 산책.
 독서 후 늦은 오후 출근.
 퇴근 후 아이와 조금 놀다가 9시쯤 취침.


옆집 아저씨가 이렇게 지낸다면 분명 백수라고 생각했을 거 같다. 하지만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시간표의 주인공은. 짜잔. 바로 나다. 게다가 금요일은 아내와 함께 산에 간다. 낮맥도 한다. 일반적인 직장인처럼 일하는 날은 토요일 하루다. 그나마 퇴근시간은 내 마음이다.


          반면, 아내의 스케줄은 타이트하다. 진료시간은 상담 스케줄로 빡빡하다. 일과 후에는 처방과 복약안내서가 기다리고 있다. 야근이 필수인 구조다. 어쩌다 일찍 퇴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을 한 채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워킹맘의 삶이다!! 게다가 하루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니 주 4일 진료라는 말이 무색하다.


          참 아이러니하다. 투자은행(IB)에서 주 100시간 넘게 일하는 선배들을 동경했던 나는 공기업 비스름한 회사를 거쳐 거의 반백수로 살아가고, 장래희망이 뜨개질인 아내는 밤새우는 날이 더 많은 패션 에디터를 거쳐 한의사가 되었는데 아직도 일주일에 몇 번은 별을 보며 퇴근하고 있다니. 서로의 위치를 바꾸고 싶은 심정이다.     


          처음부터 프로 야근러와 백수를 계획했던 건 아니다. 내가 실무를 좀 더 했던 시절도 잠깐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고 지금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자영업과 사업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가 있어야 돌아가는 게 자영업이고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게 사업이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자영업인 한의원을 사업화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내와 내가 실무를 최소화해도 잘 돌아가는. 그런 한의원을 만드는 것이 거창한 계획의 첫 단추였다. 목표의 반은 이루었다. 직원이 늘어나며 나는 자유를 얻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내의 일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새로운 환자가 안 오면 내 탓이고, 왔던 환자가 다시 안 오면 니 탓이다"


          한의원을 오픈할 무렵 내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무식이 용감이다. 마케팅은커녕 연필 한 자루 팔아본 적 없는 내가 무슨 자신감에서 이런 소리를 지껄였는지 모르겠다. 뭐 내 인생이 대개 이렇다. 일단 저질러놓고 수습해 나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뒤처리도 깔끔하지 못한 거 같다. 왔던 환자는 다시 오는데 새로운 환자가 안 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내가 이 말을 듣고 위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내는 아직까지 내가 한 말을 믿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우리의 탓으로 생각하는 아내는 참 너그럽다. 사실 작금의 상황은 모두 내 탓이다. 우리 한의원에 처음 방문하는 분들은 대부분 주변 아무개의 소개로 온다. 엄마가 가보라 해서, 언니가 좋다고 해서,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등등.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다는 거다. 여기에 내가 보탠 것은 1도 없다. 그나마 우길 수 있는 것은 직원을 많이 써서 - 한의원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 서비스의 만족도를 올렸다는 거 정도?


          얼마 전 아내가 동기 결혼식에 다녀와서 몇 해 전 개원한 남자 동기 이야기를 하였다. 같이 어울린 적이 있어 나도 아는 친구였다. 3040 여자들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우리와 달리 그 친구는 전통적인 한의원, 즉 65세 이상이 대부분인 근골격계 통증 치료를 주로 하는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돈을 많이 벌어 건물을 살까 고민한 끝에 아파트를 샀다는 거 아닌가.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 주변이 잘 되는 걸 진심으로 좋아한다. 잘 되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라도 더 알면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나의 무능력을 코로나의 탓으로 돌린 나의 파렴치함이 발각된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이 시국에도 역시 잘하는 놈은 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괴롭게 한 건 매출 규모가 우리 한의원을 넘어섰다는 점이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규모가 중요하기에, 당장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그 매출액마저 뒤쳐진 것이다. 며칠 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자나 깨나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아내를 괴롭혔다.



친구 중에 특이한 녀석이 하나 있다. 서울재즈아카데미(現 SJA실용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0년 간 일본에서 작곡을 공부한 후 돌아와 반찬가게를 하고 있는 녀석이다. 이제는 꽤 자리를 잡아 웬만한 대기업 임원 이상의 돈을 벌고 있다. 아내와 자영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녀석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반찬가게는 수요 예측이 중요하다고 한다. 반찬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재료는 쉽게 상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반찬 대부분은 만들어 놓으면 그날 다 팔아야 한다고 한다. 변질되기 때문이다. 반찬가게 업력이 10년도 넘은 지금은 수요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초반에는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오전 장사에 계란말이가 엄청나게 나갔는데 욕심이 생기더란다. 그래서 점심도 안 먹고 직원들과 계란말이를 엄청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후에는 계란말이가 팔리지 않아 한동안 계란말이만 먹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 친구가 말했다. "사업은 절대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 안 돼. 오전 장사 다르고 오후 장사 다르더라고"


          우리 한의원은 좀 더디긴 해도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또 일희일비하여 실무로 허덕이는 아내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었다. 아내의 동기 소식에 조급해진 것이다. 며칠째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내를 보며 리더로서의 부족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프로 야근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이번엔 아내가 백수가 될 차례이다. 뜨개질하다가 하루이틀 진료하러 가는 그런 삶을 아내에게 주고 싶다. 그러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단, 조급해지면 안 된다. 내가 조급하면 아내는 힘들어하고 직원들은 불안해한다. 힘들어 보이는 대표원장과 불안해하는 직원들이 있는 한의원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친구 말이 맞는 거 같다.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 특히 리더는 말이다. 오늘도 나는 뒷산에서 심호흡을 하며 되뇌어 본다. "우린 잘하고 있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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