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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Oct 14. 2024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일에서의 소통과 공유 : 남자

"(씩씩대며) 이거 언제부터 바뀐 거예요?"

" ... "

"이런 게 있으면 공유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 "

"누가 바꾸라고 했어요?"

" ...  대표원장님이 ... "

"아 네 ... (죄송합니다) "


10년을 사귀고 또 10년을 같이 살았지만 그동안 아내에 대해 너무 몰랐던 거 같다. 그만큼 일터에서의 아내는 달랐다. 우선 긍정적인 부분이 꽤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줄은 알았지만 말까지 잘할 줄 몰랐다. 20년을 일방적인 스피커와 일방적인 리스너로 살아왔다. 나는 말할 때 행복하고 아내는 들을 때 편안하다고 했다. 그러던 아내가 몇 해전 출현한 팟캐스트를 듣고 깜짝 놀랐다. 거의 편안함을 장착한 유시민이었다. 톤 앤 매너는 부드러웠지만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명확했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처음엔 우연이려니 했다. 진행을 잘하는 호스트를 만나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 후 이어진 몇 번의 방송에서도 아내는 달변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나와의 말싸움에서도 지는 법이 없는 듯하다. 그동안 능력을 숨겼거나 하늘이 도와 갑자기 커다란 재능이 생겼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다. 일터에서의 아내는 자신감이 넘쳤다. 거침이 없었다. 자신감이 정체성이다시피 한 나는 사실 일을 대함에 있어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준비하고 또 준비한다. 가끔은 준비하다 지쳐 시작도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공자님 말씀이 유일한 위안이다. "일을 대할 때는 두려운 마음을 가져라(임사이구, 臨事而懼)" 하지만 아내는 실전형이다. 준비 따위는 필요 없다. 우선 시작하고 상황에 맞춰 가며 대응한다. 어찌 보면 아내가 요즘 인재에 더 가깝다.


          폭발력도 있다. 한의대에 다시 가고 아내가 말했다. "사실 지난 3개월 동안 하루 10시간씩 벽 보고 공부했어" 그땐 일종의 관용어구 비슷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었다. 우리 한의원은 월요일이 가장 바쁜 편이다. 한약을 짓기 위한 상담도 10개 가까이 된다(아내는 상담을 길게 하기로 유명하다). 아내는 회의를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료를 하며 빡빡하게 하루를 보낸다. 그러고 나서 처방을 하고 복약안내서를 쓴다. 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은 대개 새벽 시간이다. 열다섯 시간 넘게 밀도 있게 일하는 것이다. 30분을 한 자리에 있기도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한다. 금방 지겨워한다. 평생 가장 오래 한 일이 한의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회사까지 그만두고 합류했는데 갑자기 때려치우겠다고 하면..) 아내의 이런 습성을 진작에 알아차릴 기회가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당근에 꽂혔다. 그리고 상당기간 거의 당근만 먹었다. 결국 두 박스를 다 먹고 당근이 그대로 배설되는 것을 보고서야 당근 생식을 멈추었다. 그 후로 아내가 당근을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실수도 잦다. 자칫 일을 대충 한다는 인상까지 받을 정도다.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그 누구보다 꼼꼼하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도 참 신기한 캐릭터이다. 마지막으로, 주기적으로 쉬어주어야 한다. 멍 때릴 시간, 뜨개질할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모두 그리고 각각 필요하다. 하나라도 부족해지면 아내는 시들어 버린다. 이는 폭발력의 반대급부인 것도 같다. 스포츠카도 오랜 시간 연속으로 운행할 수는 없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덕분에 아내는 주 3일 진료한다. 역시 신은 공평한 거 같다.


          같이 일하면서 힘든 점들이 꽤 있었지만 무엇보다 곤란했던 부분은 소통이었다. 아내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에 서툴다. 무언가 결과물이 나왔을 때 공개한다 (물어보기 전에는 끝까지 말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코로나로 한의원이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며칠을 고민한 후 페이퍼까지 만들어주며 아내에게 말했다. "이거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아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럼 지금껏 고민한 나는 뭐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운영 프로세스가 바뀐 것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실장을 질책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내가 나에게 공유하지 않았던 것이었다(직원들은 둘 중 하나에게 말하면 둘 다 아는 줄 안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나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내 시간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함께 일하는 것에 서툴렀을 뿐이었다.  


          한의사가 되기 전 아내는 패션 잡지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다. 패션에 관련된 기사를 기획하고 취재하고 글을 썼다. 기사가 나오기까지의 중간 과정을 일일이 다른 사람과 공유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나는 대기업 재무 출신이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주요 조직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회사가 목표로 가기 위해서는 전사 주요 조직에 경영자의 의중을 전달해야 했다. 그렇게 아내는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나는 정보를 공유해야만 하는 곳에서 각자 오랜 기간 일해왔던 것이다.


          스타트업은 사람을 보고 투자한다고 한다. 창업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업을 이끌어가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창업가의 비전, 인성, 커리어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투자자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초기 멤버의 다양성이라고 한다. 개발자로만 구성된 창업팀보다는 서로 다른 커리어를 가진 조합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경험을 통해 이미 '다름'의 힘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완벽한 창업팀이다. 아내와 나는 마치 데칼코마니로 찍어 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내가 식당에서 예쁜 코스터를 볼 때 나는 테이블 수를 세어 하루에 가능한 최대 매출액을 계산한다. 아내가 바다를 보며 물멍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남은 여행 계획을 점검한다. 아내가 단체 회식 자리에 억지로 참석한 듯한 사람을 보며 안쓰러워하고 있을 때 나는 회식이 잦았던 회사가 그리워진다.


          다름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 이외에는 공통된 약수가 없는 소수들처럼 서로에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적도 많았다. 심하게 싸우기라도 한 날에는 마치 상처에 과산화수소라도 부은 듯 서로의 부족한 점만 부풀어 오르기도 하였다. 여러 번 소독하면서 상처가 치유된 것일까? 이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우리 사업에 가장 큰 무기라는 확신이 든다. 소수들의 최대공약수는 1에 불과하지만 공통된 약수가 없는 만큼 최소공배수는 더 커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다른만큼 더 멀리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다름'의 가치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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