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출혈, 나쁜 출혈, 이상한 출혈
(1) 주기와 기간
(2) 출혈의 상태와 양 ◆
(3) 통증과 동반 증상
(4) 진단된 질환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생리팬티를 광고를 보았다. 생리팬티가 뭐지? 어렸을 때 팬티라곤 헐렁한 면 팬티뿐이어서 생리대를 제대로 부착해도 팬티가 제멋대로 돌아가 출혈이 새어나가는 대참사가 벌어지곤 했다. 그래서 생리 중에는 생리대를 붙인 팬티 위에 나일론 소재의 꼭 붙는 팬티를 하나 더 껴입어야 했는데 여름이면 지옥의 불구덩이가 따로 없었다. 두 번 다시 입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생리팬티를 말하는 건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생리대 없이 입는 생리팬티였다! 세상에 그런 팬티가 존재할 수 있다니 믿을 수 없어! 나의 충격과 경악을 언젠가 우리 자매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유했는데 우리는 다 같이 코웃음을 쳤다. 그게 될 리가 없잖아!! 나와 언니들은 가족력으로 묶인 자궁근종인들이라 월경과다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범람하는 출혈을 겪어보면 팬티 한장으로 그 피가 다 흡수될 리 없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궁 근종 수술을 받기 전 나의 월경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낮에도 오버나이트 수퍼롱 42센티미터짜리를 사용했지만 정말 심할 때에는 채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패드가 꽉 찰 때도 있었다. 그런 상태로 한 나절에서 하루 정도가 지속되면 그 날은 거의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앉았다 일어서기만 해도 쏟아지는 느낌은 '울컥'같은 것이 아니라 '콸콸'에 가까웠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용케 죽지 않는구나 신기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 경험을 해보면 생리팬티라는 것이 어처구니 없는 물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제품은 생각보다 많다. 걱정없이 충분히 흡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하는 홍보문구도 많고 실제로 이 제품을 사용한 뒤 신세계를 만났다는 간증도 넘쳐난다. 자궁근종이나 선근증, 자궁내막증식증 등 질환을 기반으로 압도적인 월경과다를 경험하는 상황만 아니라면 이 생리팬티의 흡수력이 일반적인 월경양의 생리적인 범위를 어느 정도 커버한다는 뜻이다.
보통 정상 월경양의 범위는 주기 당 25~80cc라고 하기도 하고 35~80cc라고 하기도 하는데 평균 35cc에서 60cc 정도라고 한다. 60cc 가 어느 정도냐면 작은 야쿠르트 한 병 용량이 65cc 라고 하니 야쿠르트 병 1병이 채 안되는 양이다. 가장 많은 때(80cc)에도 1과 5분의 1에 못미친다. 처음 이 얘기를 듣고 생리팬티 간증만큼이나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출혈의 양이 '보통' 정도인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마지못해) 인정했다.
사실 생리 양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탐폰이나 패드를 쓰면 고체에 출혈이 그대로 흡수된 결과를 보기 때문에 실제로 액체 상태의 월경양을 측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월경혈이 흡수된 패드의 무게를 재서 지수화하는 방식이 비교적 객관적이라 생각은 하지만 사회생활 중인 여성이 생리혈이 흡수된 패드의 무게를 대체 어디에서 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월경양에 관해 문진할 때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어떤 크기의 생리대를 하루 몇 개 정도 쓰는가, 생리대 교체는 몇 시간 간격으로 이루어지는가, 생리대를 교체할 때 혈액이 생리대의 몇 퍼센트나 차지한 상태인가 하는 것이다.
보통 생리 주기 정도를 앱에 기록해두는 경우는 많고 몇 가지 불편한 증상들을 추가로 기록해 두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출혈의 양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록해 두거나 기억하고 계신 분들은 많지 않다. 기억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에는 '생리대 교체를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교체하는지'를 물어보고 이 간격을 파악하고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로 구분하거나 '생리대를 제 때 교체하지 않으면 출혈이 샐까봐 불안함을 느끼는지'를 주로 확인한다. 교체 주기를 알고 있거나 불안감이 있는 경우에 월경과다일 경우가 상대적으로 높다.
출혈의 양 만큼 중요한 것이 출혈의 상태다. 출혈의 색, 점도, 덩어리의 유무 등을 살펴본다. 출혈의 색은 팬톤 컬러칩을 한 바가지는 쏟아야 될 정도로 다양하다. 점도도 물과 젖과 꿀의 형태가 모두 존재한다. 굴처럼 부드러운 덩어리도 있고 피딱지처럼 건조하고 부스러지는 덩어리도 있다. 이들 조합이 출혈의 양, 출혈 시기와 연결되어 관찰된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1. 검붉은 색 + 끈적이고 점도가 높은 상태 + 덩어리가 많이 섞여 있고 꽤 큰 편 + 양이 많은 날
2. 갈색이나 검은색 + 액체와 고체의 중간 정도 상태 + 거의 찌꺼기가 뭉친 듯한 덩어리진 형태 + 월경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
3. 연한 선홍색 또는 분홍색 + 물이 섞인 듯 멀건 액체 상태 + 덩어리는 거의 없거나 극소량 + 양이 적은 경우
4. 빨간 선혈 + 그냥 코피같은 느낌, 물보다는 점도가 있지만 심하지 않은 상태 + 덩어리 없음
월경이 시작된 날부터 끝난 날까지 각 날짜마다 양과 색, 성상을 데일리로 체크해본다. 더 나아가면 어떤 양과 색일 때 통증이 더 심한가도 연결하여 관찰하는 것이 좋다. 양이 가장 많은 날 통증이 가장 심하다면 자궁의 허혈성 경련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대처가 되고, 끝무렵에 검은 덩어리가 쑥 빠져 나오면서 통증이 심하다면 자궁 내 어혈을 제거하는 치료를 일순위로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월경과다는 월경과 관련된 문제 중에 가장 시급하게 치료해야 하는 증상 중 하나다. 매달 반복되는 과다출혈은 방치하면 빈혈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빈혈은 '아 어지러워' 하고 창백해진 얼굴로 쓰러지는 연약한 클리셰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를 초래할 수 있어서 방치하면 안된다. 철분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출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나의 경우 근종을 절제하는 수술을 진행하고 나서 월경과다가 현저히 줄었다.
한의학에서는 이 상태를 '혈허'로 진단할 수 있다. 혈허는 빈혈과 일대일로 매칭되는 개념은 아니고 빈혈, 저혈압, 순환의 전반적인 장애를 포괄하는 더 넓은 병리적 개념이다. 과다한 출혈로 인한 혈액 양의 절대적인 부족(실혈), 혈액 성분 일부의 결핍(빈혈), 혈액을 원하는 만큼 국소조직으로 활발히 보내지 못하는 상태(저혈압) 등을 총괄하여 진단할 수 있다. 여자는 그렇지 않아도 월경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기 때문에 혈허에 노출되기 쉬운데 과다 출혈이나 빈발 월경으로 출혈 양이 많고 빈도가 잦은 경우 증상이 쉽게 악화된다.
'어혈'도 출혈의 양과 상태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다. 어혈은 한의학에서 설정한 여러 체내의 병리적인 물질 중 하나로 제 기능을 상실한 혈액이나 그들이 뭉친 덩어리를 의미한다. 혈전의 마이크로 버전이라 생각해도 좋다. 원래 혈액이었기 때문에 혈관 어디에다 돌아다니면서 혈관을 막고 순환을 방해한다. 근육의 경련을 더 악화시켜 월경통을 일으키기도 하고 월경전증후군으로 변비나 부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혈허와 어혈이 만나면 서로의 병리가 극대화된다. 안그래도 길이 꽉 막혀 있는데 시원하게 쓸어내려줄 혈액도 잘 공급이 되지 않는 상태인 셈이다. 두 가지 모두 염두에 두고 치료해야 나아지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