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독특한 관점, 셋 _1

여기 이토록 매력적인 세계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by 미미최

한의학은 마냥 어려울 것만 같지만 실제로 공부해보면 진짜 어렵다. 학교 다닐 때도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막막했다. 까맣고 복잡한 한자도 곤란한데 문학적으로 함축해서 쓴 의학의 이론이라니, 이 무슨 알파와 오메가로 시 쓰는 소리인가. 내용은 해석하기 나름, 암기할 내용은 산 넘어 산, 엉덩이로 시간을 깔고 앉아 닥치고 공부하는 것에 어지간히 이골이 났어도 이 공부는 참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학교 다닐 때 많이 들은 말 중 하나가 '관(觀)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마치 무림고수들 사이에 비밀리에 전수되는 한 문장의 진리처럼 전해졌는데 으레 그렇듯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었다. 이 말을 후배의 무의식에 때려 넣어준 선배들도 그 진짜 의미를 잘 알았던 것 같지는 않다. 그들도 나와 같이 혼란스러운 학부생이었으니까.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건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조언이었다. 공부가 쌓이면서, 환자를 보면서, 머리 터지게 고민하면서 조금씩 기준을 세워갔다. 학부시절부터 닥치는 대로 그러모았던 지식이 마치 한꺼번에 다 엎어서 섞어버린 열두 세트 퍼즐 조각처럼 한데 뒤섞여 있다가 '관을 세우고' 나서야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갔다.


한의학의 독특한 관점은 내가 한의사로서 갖고 있는 세계관의 핵심을 세워주었다.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방식, 건강함에 대한 정의, 질병을 대하는 태도, 치료한다는 것의 의미가 모두 그 안에서 결정된다. 어떤 것은 스스로 깨달았고 어떤 것은 더 똑똑한 누군가가 깨달은 것에 공감했지만 그 뿌리는 역시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추상적이고 어려운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제 환자를 볼 때 구체적인 지침이 되어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한의학이 몸을 바라보는 단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게 무슨 당연한 소리냐고 묻겠지만 현대의학이 인체를 바라보는 단위가 의외로 사람 그 자체보다 작은 단위인 것과 비교하면 선명해진다. 의학은 사람을 바라볼 때 사람의 간, 사람의 심장, 사람의 구조를 이루는 뼈와 근육, 혈액, 세포와 유전자 등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 각각을 대상으로 삼는다. 해부학을 기반으로 발달한 의학은 과학기술이 더해져 사람을 이루는 작은 단위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규명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인체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설명하려는 의지로 많은 것을 밝혀 냈다.


반면 한의학은 어디까지나 사람 그 자체가 최소한의 단위이다. 같은 간과 심장, 뼈와 근육이라도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사람에 한해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동의보감의 목차다. 동의보감은 의서라고 보기에 꽤나 독특한 목차 구성을 갖고 있어서 한의학이 사람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손꼽힌다. 큰 목차는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내경'의 목차가 가장 먼저 오고 그중에서도 '오장육부'보다 앞쪽에 배치된 항목이 다음과 같다.


신형身形, 정精, 신神, 기氣, 혈血과 몽夢, 성음聲音, 언어言語, 진액津液, 담음痰飮


위 항목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에 실체를 규정할 수 없는 항목들이다. 이 이후에 등장하는 오장육부나 머리, 이목구비, 팔다리와 머리털들은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그 부위로 존재하지만 위 항목들은 죽은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어쩌면 사람을 살아있다고 판단하기 위해 꼽을 수 있는 요소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살아 움직이는 인체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이 요소들이 사람의 몸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전선의 지표들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질병을 예로 들면 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현대의학은 병을 보고 한의학은 사람을 본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을 어느 정도 범위에서 파악하고 접근하는가에 대한 차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예로 가장 흔한 두 가지 질환인 감기와 소화장애를 살펴보자.


감기에 걸린 사람이 내과에 가면 바이러스가 일으킨 염증 반응에 집중한다. 한의학의 대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 감기가 몸에서 일으킨 일련의 반응을 몸의 관점에서 살려 호흡기 증상과 염증 반응만이 아니라 소화기 장애부터 관절의 통증까지 체크한다. 감기에 해열진통제, 진해거담제뿐 아니라 때로 보약이나 소화제를 처방하기도 하는 건 그래서다. 병명보다 일련의 증상이 나타난 병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어디까지가 감기고 그다음은 다른 것이라고 굳이 나누지 않고 연결하여 치료한다.


소화장애도 마찬가지다. 현대의학은 직접 세포 수준의 이상을 관찰할 수 있는 원인(염증, 궤양, 종양, 암 등)에 대해서는 분류도 상세하고 대처도 빠르다. 그 어떤 검사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소화장애는 모두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분류하는데 사실상 대부분의 소화장애가 여기에 속한다*. 한의학은 바로 이 기능성 소화불량에 대한 진단이 반대로 매우 발달되어 있다. 기허, 기울, 음허, 어혈, 담적, 위한寒, 간울, 심화, 양허... 각각의 진단마다 치료법이 함께 제시되어 있고 대체로 임상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한의학이 여러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증후군의 치료나 생활습관에서 오는 만성 질환의 관리에 탁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의학이 감별 진단으로 걸러낸 이후에 남겨진 기능성 이상들도 한의학으로 접근하기에 좋은 카테고리다.




(다음 글에서 이어질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뚜렷한 개별성과 더 뚜렷한 공통성

몸을 믿는 치료, 몸을 믿지 않는 치료

부정거사 - 부족한 것을 채우고 넘치는 것을 덜어낸다



* '... 국내에서 일차의료기관에서 3차의료기관으로 의뢰된 소화불량증 환자 중 약 8-20%에서 기질적 질환이 발견되고 70-92%에서는 기능성 소화불량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Jee, Sam Ryong, et al. "기능성 소화불량증 치료에 관한 임상진료지침." Korean J Gastroenterol 57.2 (2011): 6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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