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곳, 다다를 수 없는 곳, 그러나 간절히 가고 싶은
나의 고향에는 두 채의 집이 있다. 한 채는 내가 태어난 집인데, 낡고 허름한 빨간 함석지붕에 창호지문이 달린 시멘트를 바른 벽으로 지어진 집이었다. 지금은 오래전 시내에서 들어온 노부부에게 그 집을 팔아 그들이 개조해 살고 있다.
어릴 적 나는 크레파스나 학교에서 몰래 가져온 색색깔 분필로 시멘트 벽에 온갖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분필로 그린 그림은 천으로 닦으면 지워졌지만,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은 잘 지워지지 않아 엄마에게 들키면 혼이 나곤 했다. 열다섯 살 때까지 나는 그 집에서 살았다.
어릴 적 추억이 많은 집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고향에 갈 때마다 그 집은 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서 마을을 돌아다니다 멀찌감치서 울타리 안을 건너다보기도 했다.
그 집에 안방과 사랑방이 있었다. 겨울에는 안방에 담요를 꺼내 놓고 날으는 양탄자를 상상하며 자매들 중 누구 하나 올라타면 담요 양끝을 팽팽하게 잡고 빙글빙글 돌며 날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담요는 마법의 양탄자였다. 담요를 타고 상상하는 곳으로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태평양 바다 위를 날았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그린란드 섬으로 날아갔다.
사랑방에는 벽장이 있었다. 벽장문을 열면 곶감과 뻥튀기와 센베이 과자가 잔뜩 있었다. 우리는 수시로 벽장문을 열고 곶감을 빼먹거나 센베이 과자를 꺼내 먹었지만, 어느 날부터 벽장문을 여는 걸 두려워했다. 찍찍찍.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쥐였다.
그 집을 떠나 이사를 간 건 아버지가 근처에 땅을 사서 마당이 있는 넓은 집을 지었을 때였다. 붉은 벽돌집이었는데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거실 전면이 창문으로 설계된 아름다운 집이었다. 그 집으로 처음 이사 갔을 때,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계단이 있는 집이라니! 어릴 적에는 그런 집에 살고 싶었다.
나는 가끔 옥상으로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난쟁이 집들이 몇 m거리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고, 멀리 대관령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집을 떠나 서울로 간 것은 스무 살 때였다. 이곳과는 다른 삶이, 더 세련되고 멋있는 삶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도 딸들이 도시로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살기를 원했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옛이야기가 만들어지던 집과 고향을 떠났다.
설 명절 즈음이면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대합실은 북적거렸다. 명절을 지내러 고향에 가는 사람들 속에 여행 가는 연인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기도 했다. 그들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목적지 플랫폼을 찾아다니거나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로써의 고향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서로에게서 이미 고향을 찾은 사람들인지도,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인지도 몰랐다.
나는 강릉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진정으로 가고 싶은 곳이 고향 마을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다른 감각 속,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꿈꾸고 있었으니까. 강릉 가는 차표를 끊었지만, 마음은 어디 다른 먼 데를 향하고 있었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곳, 다다를 수 없는 곳, 그러나 간절히 가고 싶은 맨 처음의 어떤 그리운 그곳. 그런 곳에 갈 수 있는 차표는 주머니 속에 없었다.
한 아이가 엄마 옆에서 비눗방울을 날리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금세 터져버려 사라지고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들 틈새에서 계속 비눗방울을 불어댔다. 사람들에게 닿는 순간 펑, 펑, 터지는 아름다움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고향을 기하학 도형으로 그린다면 비눗방울 같은 원의 형태일 것이다. 원은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며 그 둘레를 넓혀 나간다. 존재의 시작과 끝이 그 안에 있다. 긴 세월 동안 나는 원이 둘레를 확장해 나가듯 세계를 넓혀 나가며 성장해 왔고, 성장은 현재 진행 중이다.
원은 둥지다. 모든 이야기를 알을 품듯 품어 또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참새가 제비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들면 어미 제비는 둥지 바깥에서 최선을 다해 참새를 쫓아내려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싸운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그렇게 시작되면, 제비 새끼들은 어미의 보호 아래 간신히 살아남는다. 어미 제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제비 새끼들이 다 자라날 수 있을 때까지 새끼들을 데리고 멀리 떠날 때까지 계속된다. 둥지 안과 바깥에서의 살아남기와 희망에 관한 이야기는 사랑의 힘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원이 점에서부터 시작되었듯이, 나의 존재는 점에서부터 시작되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해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의 형태를 만들어 왔다. 언젠가는 성장을 멈추고 점점 원의 둘레가 좁혀지며 한 점의 순간으로 수렴되어 사라지겠지만. 존재함이 가능한 그날까지 자라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계와 사랑 속에 스며드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그러하듯이 주어진 일생을 부지런히 살아내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내게는 최초의 사랑이 탄생한 곳이 고향집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사랑은 본능이 하는 아름다운 행위였다. 진정으로 순수하고 원초적인 사랑은 학습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미 제비가 제비 새끼를 낳고 키우기 위해 우리 집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 일은 우주가 그리 하도록 이끄는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나고 자란 곳에서의 첫사랑의 시작과 끝이 우주와 자연의 다스림 속에 있듯이. 인간과 새는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집을 짓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사랑의 탄생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나는 대합실에 앉아 고향집에서의 추억을 방울방울 떠올리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돌아갈 곳을, 돌아가야만 하는 어떤 투명하고 아름다운 곳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이 사람이든 어떤 익숙한 장소든 시간 속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