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눈물 한 방울

한 번도 똑같은 눈물을 흘리는 삶은 살지 않았음을

by 김민율

나와 당신의 눈물 한 방울




사람의 시작과 끝에는 눈물이 있다.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 자신의 존재를 바깥 세상에 알리기 위한 신호음은 첫 울음소리였다. 그 울음소리는 조용히 번데기를 탈피해 바깥으로 날아오르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볍고 아련하고 여리고 연약해서 가엾어 보이기까지 한다. 엄마가 그 첫 울음소리‘응애응애’를 어르고 달래 무럭무럭 자라나게 한 것. 나와 당신의 울음은 그렇게 조금씩 자라나 더 큰 울음소리로 깊어지고 넓어지며 번져간 것이다.

그러니 눈물이 없었던, 혹은 없는 사람은 없다. 어떤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조차 그 사람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존재가 탄생했던 그 자리에서 작은 신호음이 들린다. 아주 작은, 이제 막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 여리고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하고 솜털 난 존재의 신호음‘응애응애’를 기억하지 못할 뿐. 나와 당신의 첫 눈물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의 첫 발자국이었다.

탄생의 울음소리는 제각각 다른 데시벨로 울린다. 절대치의 데시벨을 갖지 않는다. 첫 울음소리는 가냘프고 돌봐줘야 할 것만 같은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지만, 제각각 울음소리는 상대치의 데시벨을 갖고 태어난다. 자기만의 높낮이를 가진 자신의 소리가 귀를 간질이기 전까지, 나와 당신은 자궁 안 무음으로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이 오기 전까지. 말도 없으시고 순하셨기 때문에, 자식들한테 나쁜 소리는 하나도 않고 공자 같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무서운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눈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둥근 밥상 앞에 가족이 둘러앉아 따뜻한 저녁밥을 먹을 수 있게 부지런히 일만 하는, 슬픔이 없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본 건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우리는 아버지보다 조금 늦게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 저만치서 삼베로 짠 상복에 굴건을 쓴 아버지가 우리를 맞으러 오셨다. 나는 전통식 상복을 입은 아버지가 낯설었다. 아버지와 마주 하고 서 있는데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아버지가 울고 있네. 슬픔이 고여 있네. 그때는 아버지의 눈물이 참 낯설었다.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눈물을 본 것은 11월 마지막 날 새벽 12시 55분 아버지의 임종 때였다. 자정을 넘어가던 그 새벽녘에 간호사가 산소마스크를 끼우고 점점 낮아지는 산소 포화도를 체크하는 사이에, 아버지의 숨이 점점 낮아지고 이내 영원히 멈춰버리는 순간을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호흡을 다하고 있었다. 곧 숨이 조금씩 잦아들더니, 마침내 그 숨의 높이와 가슴의 높이가 가장 낮은 자리로 돌아가 멈추었다. 엄마가 조용히 아버지의 배 가운데 손바닥을 대고 마지막 숨을 받듯이 함께 하셨다. 아버지는 편안히 돌아가셨다. 우리에게는 아버지와의 첫 이별이자 마지막 이별이었다. 간호사가 청각은 남아 있으니 하시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아빠, 사랑해. 고마웠어. 아버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콧대의 비스듬한 곳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발자국이었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잘 울지 않는다. 감정을 절제하는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어느 때는 속상해서 울컥해서 안에서 소용돌이치며 차오르는 눈물이 나도 모르게 툭, 한 방울 떨어지거나 눈썹에 매달려 있는 눈물방울들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풍경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을 때도 있다. 울음소리는 내지 않은 채,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상대방에게 보이는 게 부끄럽기 때문에 울지 않는 척 하지만, 눈물 한 방울의 정직함을 속일 수는 없다. 나는 살다가 가끔 마주 앉은 한 사람에게 눈물 한 방울을 들키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웃기도 한다. 나는 아직 더 자라나야 하고,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아마 더 많이 남몰래 혼자만의 방에서 울기도 할 것이다. 실패한 모든 일들 앞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사는 데 뛰어난 재주가 없는 사람의 부끄러움 앞에서 눈물 몇 방울 흘리겠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좋아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사람이 되어갈 희망이 있으니까.

어느 여름날 저녁. 도마에 껍질 깐 양파를 올려놓고 썰었다. 두 어개 쯤 썰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슬퍼서 쏟아지는 눈물이 아니었지만, 이 눈물의 양은 아버지의 장례 때 흘리던 눈물만큼이나 그 총량이 어마어마했다.

현미경으로 눈물을 관찰해 보면 양파를 썰다가 흘린 눈물이든, 슬픈 감정으로 인해 흘린 눈물이든, 눈물의 결정체는 다른 모양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금물일 뿐이지만, 그 속에 함유된 각종 항체와 효소의 성분과 비율이 달라 결정체도 달라진다고 한다.

첫 눈물. 나와 당신이 태어나 흘린 첫 눈물의 결정체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눈물 한 방울 속의 아름다운 결정체는 삶의 과정 속에서 시시때때로 변해갈 것이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눈물 한 방울의 결정체 모양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삶의 모양이 그러했음을, 한 번도 똑같은 눈물을 흘리는 삶은 살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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