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by 주드

나의 서른두 번째 생일은 그동안 그리고 이후 지금까지의 모든 생일을 통틀어 가장 놀라웠고, 가장 분주했고, 가장 두려웠고, 가장 설레었고, 가장 아팠고, 가장 피곤했고, 그리고 가장 행복했던 생일이었다. 그날 아침 공기는 차갑고 맑았다. 안방 서랍장에 기댄 채, 바닥에 가득 고인 겨울햇살을 바라보며 참 뽀얗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좀 더 멀리까지 산책을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 양수가 터졌다.


아이는 일주일 후에 나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산기가 있어 3주간 입원하기도 했던 터라 줄곧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차분한 마음과는 달리, 뽀얀 햇살 조각보 위로 투명에 가까운 붉은 꽃물 같은 것이 점점 큰 원을 그려나가자 몸이 덜덜 떨려오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아이는 뱃속에서 똑바로 서 있었다. 하는 수없이 제왕절개를 했다. 전신마취 상태였다가 잠시 깨어나 몽롱한 눈으로 싸개에 싸인 아이를 보았을 때, 또렷한 인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기에게 첫마디 해주세요, 산모님. 간호사가 내게 아이를 가까이 대 주었다. 은우야, 엄마랑 뽀뽀하자. 나도 모르게 나온 첫마디였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산모들은 누구나 극심한 배고픔과 마취가 풀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찾아오는 끔찍한 훗배앓이로 출산 첫날을 보낸다. 복부 위에 지혈을 위한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올려놓은 채 팔다리 하나 꿈틀거릴 수 없는 상태로 똑바로 누워 병실 천장만 내내 바라보았다.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어 계속 눈물이 났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음을, 생일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아챌 겨를이 없었다.


조금씩 일어나 앉아 있을 수 있고,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자 링거 거치대를 지팡이 삼아 걷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개복수술을 한 적이 없었기에 그런 고통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는데, 고통의 크기와 끝을 가늠할 수 없어서 두려움마저 들었다. 다리가 막 생긴 인어공주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인 채, 아이를 보러,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부단하게 신생아실로 향했다. 나는 벌써부터 아이를 그리워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어머니가 되는 첫 조건이며 평생을 품고 가야 하는 그 무언가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날부터 나는 아들과 함께 생일을 맞는다. 어머니는 헌신적이고 아들은 다정해서, 이들의 생일은 매일매일 쌓여가는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다만, 언젠가부터 생일 자체에 대해서 별로 감흥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여느 때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하루, 아이가 간식으로 종종 먹는 케이크를 고르고 며칠 전에도 먹었던 미역국 메뉴를 또 한 번 식탁에 올리는 날. 짤막한 노래와 촛불이 있긴 하지만, 이어지는 덕담과 애정표현은 생일이라고 과하지도 유난할 것도 없이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저녁에 늘 보이는 풍경이다. ‘내 생일’이라고 하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하게 소중한 하루이다.


그럼에도, 일 년 중 이 날이 특별한 이유는 오로지 14년 전 이 날은 내게 천사가 찾아온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써준 손 편지를 기다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함께 생일을 지내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고, 연필로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슬픈 마음이 들지만 어머니들은 늘 이러했다.


내 생일에 나는 어머니가 되었다. 몇 번이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생일날마다 행복하고 현명한 어머니로서 그날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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