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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May 05. 2022

'ㅅ'으로 시작하는 말

결론이 없는 글을 쓰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쓰는 것 말고는.      

 ‘ㅅ’으로 시작하는 단어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한 날, 공교롭게도 나의 고질적인 내면의 문제가 다시 고개를 쳐들게 만든 일이 벌어졌다. 그날 오후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준비가 안 되어서’ 반장 선거에 나가지 못했다며 무척 아쉬워했다. 아이에게 ‘떨어지면 어때? 2학기에 용기 내어 도전해보자’라고 위로하며 아이가 속상한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도록 도왔지만, 정작 나의 내면에는 그때부터 거센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째서지? 영리하고 재능 많고 성격도 좋은 내 아이가 왜 이렇게 자신감이 부족한 것이지? 혹시 나 때문일까? 내가 아이를 완벽주의로 몰아가는 걸까? 내가 칭찬에 너무 인색한 탓일까? 아이를 키우는 내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면 어쩌지?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는지도 몰라.’

그랬다. 그날부터 이삼일을 나는 내 마음 속 어두운 그늘 속에 자리한 오래된 거울을 다시 꺼내 들어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확인했다. 아직도 그 안에 단단히 웅크린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그것, 낮디 낮은 내 자존감. 

 그리고 내 머릿속에 ‘ㅅ’으로 시작하는 몇 개의 단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실수’ ‘실패’ ‘실망’ ‘서투름’ ‘슬픔’...... 이 단어들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자꾸 껴들었다. 그래서 자꾸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미안해했고, 그에 따라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아이가 자신감이 부족해서 반장 선거를 포기한 사건은 곧 엄마가 부족해서, 엄마가 잘 이끌어주지 못해서, 따라서 엄마가 방법을 찾아내야만 하는 그런 결론으로 이어졌다. 자존감에 타격을 입고 맥없이 스러지는 상황에서 나는 스스로를 원망하고, 원망할 만한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나는 평소 아이에게 내가 어떤 엄마인가를 생각해보았다. 아이가 잘했을 때와 아이가 실수했을 때 아이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아이가 행복해할 때는 언제인지, 아이가 슬픔에 빠질 때는 언제인지. 그 찬란함과 깊은 어둠을 오갈 때 엄마는 어떤 얼굴과 목소리를 하고 있었는지. 엄마의 눈빛에서 숨기려고 애써도 숨겨지지 않는 뭔가를 아이가 발견한 것은 아니었는지. 

 집요한 탐색은 당연하게도 나의 먼 과거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아이의 나이였을 때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는지. 좌절과 부끄러움과 질투와 한없이 작아지는 나의 모습에 두려움마저 느꼈던 그때, 나는 어떻게 그 상황을 이겨내고 해결하였는가. 아니 이겨낸 적이 있는가. 비통함을 가슴에 꾹꾹 눌러담은 채 시간이 흘러서 기억이 퇴색되기만을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때 내 곁에는 누가 있었는지. 그때 나의 어머니의 눈빛과 목소리는 어떠했는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나의 어머니는 해주셨는지.

 결론이 없는 글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나는 결론을 낼 것이다. 내게 글쓰기란 그러한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글을 쓰는 또 다른 내가 해결책을 찾아주려 갖은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내 탓이면서 내 탓이 아니다. 내 탓이 아닌 이유는 아이의 인생이 아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로부터 받은 DNA가 설계한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다(자유의지의 가장 소박하고도 결단력 있는 행위는 바로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아들의 자유의지를 믿는다. 겪어내고 끌어안고 결단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내 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이가 아직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부모, 특히 주양육자인 엄마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환경에서 엄마의 양육 신념은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자유의지가 힘을 발휘해야 할 영역이다.

 ‘ㅅ’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다시 떠올려본다. ‘소망’ ‘신뢰’ ‘성장’ ‘사랑’. 그리고 다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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