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 Jun 07. 2022

축구 일지 #1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격렬한 운동을 해봐야겠다 결심했다.

작년부터 품었던 생각으로,

사실은 서핑이나 스쿼시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 2회 발레핏을 하고 토요일마다 요가를 하고 있어서

'나이가 더 들기 전에만' 하면 된다고 이따금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발레핏 수업이 폐강되고 말았다.


마음이 다급해졌지만

서핑은 계절이 일렀고,

스쿼시는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었다.

충동적으로 결정해버렸다.

축구를 하기로.


사실 굉장히 충동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구를 해오면서

아이는 그렇게도 엄마를 구장 밖에 세워두었다.

엄마, 나 하는 거 보러 와.

엄마, 우리가 어떻게 골 성공시키는지 봐줘.

엄마, 동영상 많이 찍어줘.

그래서 가급적 그렇게 했다.

아이가 제법 잘하니 구경하는 게 꽤 재밌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뭐랄까,

아이의 나이가 되어 저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중학교 체육시간에 내가 핸드볼을 꽤 잘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당황스럽게도,

올봄 들어서 그 기억은 점점 선명해졌다.

맞아, 어릴 때 나 잘했었지.

나와 어떤 친구가 가장 잘해서 우리는 늘 상대팀으로 만나 이글이글 눈빛을 주고받았어.

나만큼 키가 작고, 안경을 꼈으며(그때 나는 시력이 좋아서 안경을 끼지 않았다),

볼에 갈색 점이 있었던 것도 기억나.

그 친구가 골대에 공을 때려 꽂으면 아ㅡ 탄식부터 나왔지. 대개 둘에 한 번은 들어갔으니까.

그러나 나는 어땠게?

우리 차례가 되어 공을 건네받는 순간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수비수 사이를 돌파해

순식간에 반대편 골대 앞에 서 있어서 몸을 붕 날렸지.

어느 틈에 갈색 점이 내 눈앞에 와 있었고(대단했던 거 인정)

나는 몸을 돌려 왼쪽 코너로 팔을 휘두르는 척하면서

오른쪽 코너 아래로 때려 꽂아 넣었지.

그때 골키퍼의 허망한 표정과

와ㅡ 뜨거운 함성과

그 함성이 내 가슴을 통째로 뒤흔들며 공명하던 것이

점점 또렷이 기억나는 것이었다.

    

이제 그때의 핸드볼은 못 하는 건가?

전략적 공격과 수비, 스코어, 승리의 하이파이브, 응원의 열기, 패배도 삼키는 스포츠맨쉽-

이런 건 내 생애 앞으로 없는 건가?

비록 핸드볼은 아니지만

그거랑 비슷(?)한 축구...라도?


축구 수업을 같이하려는 어머니들은 생각만큼 없었다.

최소 6명(시합을 하려면)이 필요했지만 가까스로 나 포함 두 명이 모였을 뿐이었다.

코치님의 전화(아이의 수업이 아니라 내 수업을 위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운을 뗐는데,

코치는 "어머님, 지금 7명이 모였습니다!"라고 가슴 벅찬 소식을 전했고

이어 그는 "헤헤헤" 웃었는데

아, 그 웃음 들으며 신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그때 해도.


축구클럽 원장님은

어머니들의 변덕을 우려하셨고,

우리의 코치는 '체험수업'으로 이를 돌파했다.

그리하여 축구를 해볼까 막연한 생각을 품은 지

사흘 만에 체험수업을 참가하게 되었다.


체험수업은

재밌었지만 긴장되었고,

솔직히 내가 젤 못했다.

다들 코치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바로바로 습득하여

아주 능숙하게 해냈다.

'엄마가 아이 망신시키고 있구나.'

이토록 하나같이 키 크고 운동 잘하고 에너지 넘치는 어머니들 사이에 서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알잖아, 네 인생은 언제나 연습으로 가득했잖아. 이번에도 똑같은 거야. 연습하면 돼.'


그러나

이 생각은 수업 후반부 연습경기에서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30분 정도 세 번에 나눠 뛰었던 것 같다.

심장이 터져서 죽는 사람도 있나요?

너무도 절박하게 묻고 싶었다.

정말이지 나는 죽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양 팀이 동점이어서 골든볼로 승부를 결정하기로 했고,

모두가 지친 상황에서 좀처럼 골이 나지 않다가

상대팀이 슈팅을 했다.


골이 들어가고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다.

왜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는가.

왜 나는 터질 때까지 뛰지 않았는가.


그 순간 나는 상처받았던 것 같다.

끝까지 뛰어서 그 골을 제지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저질스럽기 짝이 없는 나의 체력에 충격도 받았다.

핸드볼 소녀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체험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들은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재밌다고 잘해보자고.

나는 머쓱한 웃음만 지었다.

하기 싫었다.

두려웠다.

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축구팀을 모았던 내가 빠진다는 것도 우스웠다.

코치님은 세 번째 수업까진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네 번째부터는 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뭐, 아무렴 어때!


하루 동안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자책에서 조금 벗어나 조금 차분하게 생각해보았다.

만약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내가 다시 이런 격렬한 운동을 할 기회가 생길까?

정말로 내 생애 '핸드볼'은 없지 않을까?

'서핑'도 '스쿼시'도 없지 않을까?


그때 날카로운 충격이 머리를 스쳤다.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축구하는 엄마 너무 예뻐.

아아,

아이에게 포기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아오 진짜.


일단 해보기로.

앞으로 얼마나 나는 괴로워할 것인지.

뻔한데 뻔할 뻔 뻔뻔뻔한데....

나는 괴로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근데

솔직히 좀 재밌었잖아.

그치.






작가의 이전글 'ㅅ'으로 시작하는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