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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Oct 26. 2022

당신만의 것

산책을 하다가 멋진 그림들이 내걸린 갤러리가 있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작고 조용한 가게에 들어서면 나도 몰래 숨을 참게 되는데 그 긴장감이 참 좋습니다.     
이처럼 작은 갤러리에서는 특히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그림과 조각, 공예품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된 공간에서,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지 짧은 순간 고민을 하는데
그 순간에 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듭니다.      

사방에서 온갖 시각적 자극이 물밀듯 밀려오고 나는 나의 눈길을 부지런히 좇아가며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오늘은 어떤 작품이 내 가슴을 뛰게 할 것인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막 둘러보려는데, 갑자기 직원이 모습을 드러내며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직원을 바라보았습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였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여느 직원과는 뭔가 다른, 어떤 초연함이나 자부심 같은 게 내비쳤습니다.     
고개만 끄덕하고는 조금 구경하던 중
나는 어느 한 그림에 꽂혔습니다.


바닷속 모습을 그려놓았는데 암석이며 물풀이며 정말 섬세해서 사진처럼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닷물 색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무슨 색들을 조합한 거지?
열심히 궁리해보는데 갑자기 뒤에서 아까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나더니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직 완성작이 아니에요.
이제 배경만 거의 다 그렸고
물고기들을 그려 넣을 건데
두 달 정도 더 걸릴 것 같아요.     

역시 그 남자는 그냥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화가였습니다!
아까 내가 읽어낸 눈빛이 잘못 본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무릇 예술가들은 질문받기를 좋아하는 법이지요.     

이 갤러리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것이고 자신은 시간이 날 때 이곳에 나와 있으면서 작업도 한다고, 묻지도 않은 말까지 그는 했습니다.     

와, 정말 행운아시네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는데 그는 미소 지으며 노트북을 꺼내와서는 바닷속 그림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들이에요. 저는 사진과 똑같이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에겐 훌륭한 연습이 되지요. 좋아하는 유명화가 작품 예닐곱 개 정도 따라 그려 보세요. 그리고 그들 작품을 혼합하는 거죠.      

그 안에서 내 originality는 어떻게 찾아질까요?라고 물으려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좀 어리석은 질문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감과 기름을 꺼내더니 미리 세팅해놓은 유리판에 색을 짜서 나이프로 쓱쓱 섞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바닷물 색이 만들어졌습니다. 손놀림이 대담하시네요,라고 말하려다가 또 입을 다물었습니다. 작업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옮기려는데 그가 다시 말을 시작했습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년 넘게도 걸려요. 그러나 처음이 어렵지 한번 그려내면 그와 비슷한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그림만 그려내면 사람들이 질려하겠지요. 그럼 저는 다시 몇 개월, 1년에 걸쳐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만의 것을 꼭 찾길 바랄게요.'     

갤러리를 나오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저런 삶도 꽤 괜찮다.
아니, 아주 복 받았구먼.     


예술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오늘 아침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언제든 다시 들르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작가의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네요.
이렇게 무례할 수가.
세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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