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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on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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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Apr 07. 2020

골드코스트에서 브리즈번으로

 돈 할아버지를 뵙자마자 면접 시간을 말씀드리고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골드코스트에서 탕갈루마 선착장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는 방법을 검색했더니 무려 3시간 반이나 걸린단다. 그조차도 시간 넉넉하게 도착하려면 새벽 4-5시에 트램, 버스, 기차로 여러 번 갈아타고 30분 넘게 걷기까지 해야 한다. 골드코스트랑 브리즈번은 호주를 대표하는 도시들이니까 당연히 직행 버스가 자주 있거나 교통편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 상상만 하더라도 너무나도 험난한 여정이 될 것 같아서 한숨부터 푹 나왔다.

 하지만 차로 가면 81km, 한 시간 반이 안 걸리는 거리. 할아버지께서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하시더니 도저히 대중교통으로 가는 건 무리일 것 같다며 차로 직접 운전해서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여러 가지로 신세 지는 게 한둘이 아니어서 그건 너무 무리 같아 진심으로 사양했는데 할아버지가 너무 완강하셨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는 건 여러 가지 변수들이 생겨 위험할 수 있으니 오늘 출발해서 브리즈번에 있는 캠핑장에서 묵고 내일 아침에 시간 맞춰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다. 차에 캠핑 장비들을 싣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실 정도로 캠핑을 좋아하시는 이유도 겸사겸사인 듯.

 전화로 우리가 묵을 캠핑장 리셉션이 7시 반까지라는 걸 알고 나선 그때부터 정신없이 짐을 싸고 5시 반에 집을 나섰다. 가뜩이나 면접 준비할 여유도 없어서 마음이 조급하지만 차 안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몽글몽글 너무 예뻐서, 그리고 호주에서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게 신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창밖 구경만 했다. 어차피 한 시간 반 정도 후면 캠핑장에 도착할 테니 저녁 먹고 난 후에도 시간이 조금 있을 테니까.

 브리즈번이 적힌 표지판을 지나갈 때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질 정도였고 차가 브리즈번 시내로 진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냥 설레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점점 예감이 불길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캠핑장 위치대로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틀렸단다. 이미 중심가로 보이는 곳을 지나 외곽 쪽으로 이리저리 돌지만 계속 목적지를 이탈하고 결국 완전히 길을 잃었다. 벌써 떠난 지 두 시간 반이 지난 데다가 우리가 가려던 캠핑장 리셉션도 문을 닫아서 찾아가도 소용이 없게 되었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던 할아버지조차 자포자기하셨고 어딘지도 모르겠는 도로 위에서 빙빙 돌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를 도와주시려던 할아버지까지 괜히 곤경에 처하게 했다는 죄책감, 차라리 내일 새벽 일찍 혼자 갈걸 괜히 오늘 미리 왔다는 후회감, 그렇게 기다려왔던 면접을 허무하게 망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이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한꺼번에 터져서였 나보다.
 어차피 캠핑장 계획이 무용지물이 된 이상 단지 나를 아침에 선착장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할아버지까지 브리즈번에 머무실 이유는 없었다. 차 안에서 급하게 검색해서 그나마 가장 시내 중심지에서 가까운 호스텔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드리고 그 앞에서 할아버지와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차가 떠나고 난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아 그 자리에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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