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 호주로 떠나기 전에도 그렇고, 이상하게 장기간 집을 떠나 있게 되는 상황 직전에는 온갖 안 좋은 일들이 다 한꺼번에 겹치는 것만 같다.
이번에는 큰 액수의 중고나라 거래 사기를 당하질 않나, 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거미에 손가락을 물리질 않나, 운전면허 시험을 떨어지질 않나, 친한 친구의 오해로 갑자기 사이가 틀어질뻔하지 않나.
이 중에서 한 두 개도 감당하기 힘든데 몇 주 사이로 연속 안 좋은 일들이 계속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니 떠나기 직전에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건 둘째더라도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아빠와의 갈등이었다.
엄마 아빠 두 분 다 내가 내린 어떠한 선택이나 결정에 제재 없이 지지해주시는 건 마찬가지지만
엄마는 속으로는 걱정되어도 나한테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응원하고 기도해주는 편인 반면 아빠는 숨기지 못하고 종종 지나친 우려가 잘못된 방식으로 전달될 때가 있는 편이어서 아빠와의 갈등은 끝이 없었다.
호불호가 뚜렷하지 않은 나지만 그런 내가 오래전부터 싫어하던 것들이 있다.
비교, 질투심, 이기심과 같은 쓸데없이 불필요하게 행복을 망치는 것들.
이런 나를 이미 너무 잘 아는 아빠가 호주로 떠나기 전의 나와 나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타인들의 삶을 비교했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떠나는 마지막 주까지 우리 사이의 갈등은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명확한데 그동안 항상 나를 믿고 응원해주던 아빠는 나에 대한 신뢰감이 부족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던 떠나기 직전 날, 울음이 잠잠해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엄마가 같이 나갔다 오자 했다.
엄마와 나란히 집 앞 벤치에 앉았다.
같이 산책을 한적은 많아도 이렇게 벤치에 같이 앉아 얘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속상함을 숨김없이 모두 솔직하게 엄마에게 털어냈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엄마도 알고 나도 안다. 아빠가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그래서 더욱이 이런 상황이 우리 둘 다에게 안타까운 것도 너무 잘 안다.
엄마와 오랜만에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는 속이 좀 후련해졌다.
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가도록 밤이 깊어졌다.
다음날 새벽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하지만 잠들기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