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일기: 평영까진 바라지도 않았어

평영 시작!

by 잼써

평영을 곧 배우게 될 거란 건 알았다. 자유형에서 헤매고 있을 때 배영을 시작했으니 배영으로 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만 되면 평영을 시작하겠지. 역시나 머지않아 평영을 시작했다.


앞뒤 아무 말 없이 "자, 배영!"이라고 외치며 물에 빠지게(?) 만들었던 강사니, 평영도 물속에 빠진 개구리(개구리는 수영 잘하는데?)처럼 철퍼덕 내던져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평영은 좀 어려운지, 자세를 잡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밖에 나와서 타일 위에 배를 대고 누웠다. 개구리 다리를 만들어 발바닥을 펴고, 그 위에 킥보드를 얹어 두었다. 다소 굴욕적인 자세였다. 킥보드를 발바닥 위에 얹어둔 이유는 발목을 힘껏 젖히기 위해서였다. 발목 뒷부분이 유연하지 못해 까치발을 들지 않으면 쭈그려 앉지도 못하니 평영에서 난항이 예상되었다.


한 5분 정도 그러고 있다가 물 안으로 들어왔는데, 허리와 종아리가 벌써 뻐근했다.




발차기는 폼인가요?


허리에 매는 보드(등딱지)를 차고, 킥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발차기만 우선 연습했는데, 아무리 발을 차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보통 느리게 나가면 ‘안 나간다’라고 표현할 텐데, 나는 정말로 아예 앞으로 나가질 않았다. 반대편에서 수영해오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뒤로 밀릴 정도…


그래서 나는 발로 바닥을 디뎌 앞으로 가는 속도를 만든 다음에 발차기를 했다. 바닥을 디뎌 만든 속도가 줄어들 때쯤이면 역시나 나는 제자리였다. 내 바로 앞에서 수영하던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갔고, 내 뒤로는 줄이 밀렸다.


아무리 세게 발을 차도 시소처럼 위아래로만 움직였다. 뒤에 오던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날 앞지르기도 했다. 앞서 가던 사람이 턴해서 반대로 나를 지나치면, 나는 원래 가야 할 거리를 반도 못 갔지만 턴해 버렸다. 앞으로 안 나가니 갈 거리가 아무리 짧아도 평영 연습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건 평영 발차기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발로 하는 모든 동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수업을 시작할 때 매번 킥판 잡고 자유형 발차기만 하는데, 그때도 내가 제일 느리기 때문이다. 관절 건강을 생각해서 몸을 사리는 것 같은 최약체 할머니보다도 훨씬. 여자 중에서는 키도 크고 튼튼한 편인데… 이 두꺼운 허벅지는 폼인가? 물속에서 도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




해녀 영법


등딱지와 킥판은 강사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금방 빼버렸다. 앞으로 나가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등딱지 덕분에 평영할 때 엉덩이가 너무 많아 떴다. 몸의 밀도가 높음을 느끼면서 살아와서 수영 배울 때 물에 너무 뜨는 걸 걱정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등딱지와 킥판을 빼고서도 숨을 쉴 만큼 상체를 수면 밖으로 내보내기는 잘했는데, 발차기를 할 때 너무 깊이 잠수가 되었다. 숨을 쉬고 나면 바로 코 앞에 수영장 바닥이 보였다. 좀 더 열심히 하다가는 잘못해서 코가 깨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굴이 수면보다 높게 올라가서 숨을 쉬었다가 거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해녀 영법... 위아래 진폭이 너무 크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서 잠수를 조금 덜 하려고 노력하면 발차기가 약해 앞으로 더더 안 나갔다.




J여 안녕


설상가상으로 평영 첫날이 지나고, 같이 수영을 배우던 J가 중급반으로 가 버렸다. 어릴 때 수영을 배운 적이 있고, 몸의 움직임이 타고난 J는 중급반으로 갈 실력이 충분했다.


수영을 6개월은 해야 자유형으로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두 달도 채 되기 전에 1회 이상 허우적대면서 숨을 쉴 수 있게 된 건 강사와 J의 덕이 컸다. 나도 모르게 하는 이상한 짓을 J가 흉내 내어 보여주며(거의 슬랩스틱 수준) 이러이러하게 하라고 조언해줬다. 그러면 말은 잘 듣는 내가 열심히 J의 말을 따라 해 자유형을 교정해 왔다.


J가 없으니 평영에서 엄청난 정체기가 오겠구나 직감했다. 평영으로 온다는 수태기가 이제 오는 건가.. 싶었는데 코로나가 먼저 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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