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관계도 없는 일에서 이유를 찾고자 몰두하면 우울해지기만 할 뿐이다.
또 부상을 당했다.
이번에는 오른쪽 발목.
단차가 좀 있는 보도블록을 밟았을 뿐인데,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밟아도 큰 무리 없이 지나갈 것 같은 아주 작은 단차.
예전에 다쳤던 발목이 재발했다.
상실감과 좌절감이 엄청났다. 요즘 여러 방면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자꾸 생기는데, 발목까지 또 문제를 일으키다니.
내 삶이 소설이나 영화라면, 뒤에서 일어날 어떤 사건을 위해 의도적으로 안 좋은 일을 쏟아붓는 구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진짜 소설이나 영화라면 뒤에서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라는 기대라도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당장 일어나는 이 안 좋은 상황을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지 않으면 하락의 방향성은 각을 점점 더 키운다.
피로로 인한 오른쪽 어깨의 통증과 달리 발목은 부상을 당한 거기 때문에 한의원으로 바로 갔다. 처음 다쳤을 때 대처를 잘 못해서 후회를 했었다. 삐끗한 직후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병원에도 안 갔었는데 나중에 극심한 통증이 왔었다. 이번에는 이미 약한 발목을 다쳐서인지 처음부터 아팠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수영에 대해서 물어보니 일주일 정도만이라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개인마다 중요한 것과 목표가 다르니까...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강행하는 사람들을 이해해 주었다. 한의사의 말을 반 정도는 듣기 위해(그리고 꽤 아팠기 때문에), 진료를 받은 바로 다음날 하루만 수영을 빠지고 계속 다니고 있다. 지금은 발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상체만 이용해서 수영하고 있다.
한 달 정도 거의 매일 한의원을 다녔지만 발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한의원을 다니지 않았어도 시간이 지나면 이 정도까지는 낫지 않나 싶은 정도. 점심시간에 한의원을 가다 보니 평일마다 부실하게 점심을 때우고, 침을 맞을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도 너무 지겹고, 매일 드는 병원비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발목을 다친 후에 목디스크 증상이 심해져서 두통까지 생겼었다. 어깨, 목, 발목, 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 너무 짜증이 났다.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하지만 누구의 의도도, 인과관계도 없는 일에서 이유를 찾고자 몰두하면 우울해지기만 할 뿐이다.
처음 수영을 시작할 때부터 내 목표는 '화목 아침에 수영장 다니기'였다. 몇 년 내에 어떤 수준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던 적이 없다. 그냥 하루하루 다니다 보니 몸치임에도 어느새 상급반까지 올라와 있다.
'그냥 다니기'가 목표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에 대처하기가 좋은 것 같다. 엄청난 폭우로 한 번, 이번 발목 부상으로 한 번 딱 두 번 빼고는 무단결석을 한 적이 없다. 중간중간 수영장 공사, 코로나로 일시정지를 하면서 수태기(수영 권태기)를 겪지 못하고 넘어가서인지, 아침마다 '아 오늘은 도저히 못 갈 거 같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꾸역꾸역 잘 다녀왔다.
당분간 강사의 말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강사는 본인이 같이 가르치는 중급반 라인으로 나를 옮겨 주었다. 최근 회원들의 대대적인 진급이 있었어서 중급반에는 초보반에서 갓 올라온 사람들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상체만 이용해서 수영하더라도 오리발 수업이 아니라면 속도가 얼추 맞았다.
상체만 이용해서 돌 때는 다리 사이에 킥판을 끼우고 한다. 상체만 이용해서 수영할 수 있는 영법은 자유형뿐이다. 접영도 조금씩 시켜서 해 봤는데, 하체 동작 없이 웨이브하면 힘이 달려 상체가 물 밖으로 잘 안 나왔다. 두세 번 접영하고 일어나서 쉬고, 이렇게 했다.
상체만 연달아 연습했더니 확실히 물잡기가 많이 좋아졌다. 만약 내 실력이 초중급에 머물러 있었다면, 상체만으로 하는 수영은 시도도 못 했을 것이다. 많이 답답하지만, 우선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