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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일기) 사람들과 연결되다

괜찮은 사람들이 가득한, 연수반에 들어갔다

by 잼써

수영 글을 쉰지 엄청 오래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은 오래 안썼지만, 수영은 쉬지 않고 꾸준히 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가장 큰 뉴스는 바로 내가 연수반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a.k.a 마스터반. 동시간대 수영장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들의 반에 내가 속한 것이다.


연수반에 올라온 지는 사실 꽤 됐다.


상급반 사람들이 한꺼번에 연수반에 올라갔기 때문에 중급반에 올라갔을 때처럼 뭔가 ‘내 수영 스킬이 업그레이드되었음’을 증명받는 기분은 좀 덜했다.


학교를 다닐 때 한 학년을 무사히 마치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는 것 같은… 딱 그 정도의 느낌.


실력이 좋다고 올라갈 순 있어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강등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연수반의 실력은 중상급 반보다 조금 더 편차가 있다.


연수반이 된다는 것은, 실력을 인정받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이 수영장의 일원으로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연수반에는 수영을 오래 다닌 분들이 많고, 친분도 있어서 연수반 사람들 사이의 뉴 멤버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연수반 사람들은 전부 같은 수모를 쓰고 있었고, 반을 칭하는 이름도 있고, 수업이 끝나면 "00회 화이팅!"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카카오 ‘단톡방’이 존재하고, 1년에 한 번씩 ‘회비’를 내야 하고, 가끔 ‘회식’도 하게 되고, 어르신들과 최소한의 친분(인사를 한다거나 하는)을 유지해야 했다.


단톡방과 회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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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의 텃세


수영장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텃세 같은 거다. 텃세로 수영인들에게 유명해져, 나조차도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수영장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적의로 똘똘뭉친 사람들이 점령한 수영장이 아니고서야, 왠만해서는 중상급반까지는 조용히 다닐 수 있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부터는 영영 안 나올 확률이 꽤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수반은 수영장에 아주 오래 다닌 분들이 과반수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수영 처음에 했던 텃세 걱정을, 연수반을 앞두고 하기 시작했다.


텃세라는 게 집단의 파워를 휘두르려는 것이고, 친분이 있는 여러 사람의 모임은 그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걸 휘두르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괜찮은 사람들


연수반에 올라가는 걸 걱정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가 괜찮은 집단에 몸 담아 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시기질투하거나, 뒷담을 한다거나, 아닌 척하면서 욕심을 부린다거나, 사람을 은근히 먹인다거나 하는 사람이 주를 이루는 집단에 몸을 담아 왔다.


구성원 모두가 그랬다는 건 아니다. 여러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빌런 하나가 막강한 영향력을 미쳐, 그 집단의 분위기가 그렇게 되었다는 거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신뢰하는 사람으로서 나 또한 괜찮지 않은 사람이기에 이렇겠거니 하고 생각하긴 하지만, 여튼 그렇다 보니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그런데 연수반에 있는 나는 오히려 집단에서 보호를 받는 느낌이고, 적당한 거리감으로 적당한 호의를 베푸는 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걸 꽤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


수영은 구성원들 나잇대가 높아 어르신의 분위기가 특히 중요한 것 같은데, 이 분들은 최소 2040년대의 미래 어르신인 것 같았다. 이상한 질문 안 하고, 적당히 잘 해주시고, 구성원에게 생긴 문제를 같이 해결해 주려고 노력해 주신다.


나랑 동갑인데 생각은 조선시대 규수인 애들도 너무 많이 봤는데... 우리나라 아직 멀었다 싶다가도 엉뚱한 곳에서 큰 진보를 발견한다.


수영장에 열심히 가다보면 가끔 요구르트를 주시기도 하고, 마스크팩도 선물해 주시고(역시 물질에 약한 나인가?), 명절에는 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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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에서 ‘다음에 먹을 거 줄 거니까 빠지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뜨면, 이번에 어떤 맛난 걸 주실까 기대도 하게 됐다.


그리고 걱정하던 회식은 아직 한 번도 없었고, 1년에 한 번 정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참 의심이 많아서, '여기 좋다~'라고 했다가 나중에 나쁜 일이 생길까봐 글도 한동안 못 적었는데(핑계 맞음),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이사를 갔음에도 수영장을 옮길 생각은 아직 없다. 이사간 곳 근처에도 꽤 괜찮은 수영장이 있긴 하지만, 우선 이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싶다.


다음 글 올리기 전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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