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을 끝내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추운 겨울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지 않았고 햇볕도 따뜻했다. 어깨를 약간 움츠려 몸을 동그랗게 말면 오히려 포근한 느낌까지 들었다.
초등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등교를 하는 학생들을 많이 지나쳤다. 1차선 도로의 교차로에는 안전을 위해 교통안내 봉사원 분들도 계셨다. 전체적으로 복작복작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내가 걷던 인도는 길이 좁은 편이고, 한쪽 편에는 잡초까지 길게 자라 있었다. 두 명이 같이 걸을 수는 있겠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이 있다면 몸을 조금 틀어주는 게 매너 있을 것 같은 정도다.
내 앞에는 어떤 여자 어르신이 걸어가고 있었다. 어르신은 나보다 발걸음이 조금 느렸다. 속도에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걷다 보니 간격이 조금씩 좁혀졌다.
어르신도 뒤에 있는 나를 인지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가 되자 나를 의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 보려다가 말려는 그런 작은 몸짓이 반복됐다.
뒤에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불편해 하는 것 같아 속도를 조금 늦췄다.
그런데 어르신은 몸을 휙 돌려 내 얼굴을 한번 확인하고 다시 걸었다. 두세 발자국 걸었나? 갑자기 자리에 서더니 나에게 먼저 가라는 몸짓을 보냈다.
표정은 경직되어 있었고 행동도 부자연스러웠다. 어르신에게서 뭔가 모를 두려움 같은 게 느껴졌다. 이 상황이 단순히 불쾌하거나 두렵거나 싫었던 것 같다. 어느 쪽의 감정이더라도 근본은 불안이었다.
불안에 객관적인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원인은 마음에 있다. 그런데 불안이 단순히 마음의 작용이라고 해서 무시해 버릴 수는 없다. 그분의 과거, 생각, 몸의 상태 등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 것일 텐데, 이런 걸 다 무시해 버릴 순 없다.
나는 볕이 너무 좋고, 도심에서 풀을 보면서 걸을 수 있어서 좋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나는 전혀 모르는 어떤 불안을 이 분은 느끼고 있었다. 나도 걱정과 불안이 많은 편이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했으면 하는 마음에 어르신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앞으로 갔다. 어르신도 나에게 답례로 목을 끄덕여 주셨는데,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그 장면이 어제 하루 계속 떠올랐다. 어르신이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실까. 오늘은 조금 더 편안한 하루를 보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