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지어 한 바퀴 돌고 나니 이번에는 강사가 한 사람씩 자세를 잡아줬다. 기존 회원들은 킥판 없이, 왕초보들은 킥판을 잡고 발장구를 쳐 강사에게 다가갔다.
마치 옆에서 선생님이 보고 있는데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생의 처지가 된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학생이 어디에서 실수하는지 살펴보고 조언해 주려는 거지만, 학생은 누가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에 머리가 하얘지고 평소 안 하던 실수를 하게 된다.
차례가 되어 잠수함 킥보드를 타고 뒤뚱거리면서 다가갔다. 멍해지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지금 수준에서는 머리가 핑핑 돌아도 핑핑이나 되겠지.
강사는 가만히 날 보더니 머리를 담그라고 했다. 그래서 머리를 담갔다. 그런데 또 머리를 담그라고 했다. 강사가 시킨 데로 한 거 같은데 충분하지 않았던 걸까, 좀 더 머리를 담가 봤다.
“머리를 담그라니까요~ 머리를 이렇게 담가야지..! 왜 안 담가요~”
한쪽에서 줄을 서 있던 아주머니들이 강사의 독촉에 꺄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자유형에서는 머리를 충분히 담가서 귀가 물에 잠겨야 한다. 담근 상태에서도 고개를 들지 말고 숙여서 앞발가락이 보일 거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그렇지만 보여서는 안 되는 초고난도의 작업) 그런데 고작 눈코입이 적셔질 정도만 고개를 숙였으니 충분하지 않았다. 수면 아래에서 얼굴을 본다면 수영장 물로 마스크팩을 한 것 같은 느낌일 테다.
강사가 시킨 데로 머리를 많이 숙이니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졌고, 잠수해 있던 킥판도 점점 올라왔다. 발차기를 하면서 더 연습하니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배운 게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10년 전 2개월 동안 물안에서 허우적거리던 게 도움이 좀 되는 건가?
몸치라도 노력하면 되긴 한다. 수영이 남을 이겨야만 하는 운동이 아니니 몸을 얼마나 잘 움직이느냐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여자치고는 근력도 좀 있는 편이고 팔다리도 기니까 잘 나아갈 수도... 이런 무근본 자신감 넘치려는 순간 강사가 누군가를 불렀다.
“어이! 어이!!”
몇몇이 강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나도 그 사람 중 하나였다. 강사는 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물 밖에 앉아 발차기를 하고 있던 분을 옆자리를 가리켰다. 강사가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았다.
좌천이다…
암말 없이 내 자리를 향해 갔다. 물 안에서 걸으려니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무거운 이유가 물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무언가 때문이기도 하겠지. 계단을 올라 물 밖에서 발차기를 하던 사람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제자리가 여기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게 왜 내 얘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물 안으로 바로 보냈던 거야 하는 원망이 조금 들기도 했다.
물에 몸을 담글 자격이 없는 왕초보들이 한쪽 구석에서 쓸쓸히 발차기를 해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강사는 다른 회원을 봐주면서도 틈틈이 우리에게 들러 발차기 방법을 알려주고 자세를 잡아주었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발끝은 약간 모으고, 허벅지 힘으로 차야 한다.
발장구는 물 안에서보다 밖에서 하는 게 더 힘들었다. 처음 온 분이 물장구를 치다가 자주 쉬어서 ‘역시 발장구만 치는 건 재미가 없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분도 나름 최선을 다했던 거라는 걸 깨달았다. 물이 다리를 받쳐주지 않으니 그 무게를 온전히 들었다 놔야 했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중간중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물이 참 차갑고 무서웠는데, 물 밖으로 쫓겨나고 나니 물 안이 그리워졌다. 역시… 없어 봐야 소중한 걸 안다...
#수영 #초보 #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