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처음 온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수영 강습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다. 수영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킥판에 손을 얹고 발차기를 해 짧은 거리를 왔다 갔다 했고, 한 번도 강습을 안 받아 본 사람만 수영장 바깥에 걸터앉아 발차기를 했다.
나와 친구 J, 다른 사람과 그 다른 사람의 친구, 처음 온 넷 중에 수영장 바깥에 걸터앉은 사람은 다른 사람 한 명뿐이었다. 졸지에 나는 '수영 경험자'로 분류되었다.
수영을 해 보긴 했지만 10년 전 일이었다. J는 20년 전이긴 했지만 매일 6개월을 했었고, 너무 오래전이라 그렇지 그때 당시에는 곧잘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몸치로 태어나 2개월 강습을 받았음에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몸도 수면에 떴다기보다는 덜 가라앉은 상태였고 물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상한 동작을 주 2회 했었다. 수영도 자전거처럼 몸이 기억하는 종류의 배움이라 오랜만에 해도 잘하는 일이 이론적으로 발생할 수야 있겠지만, 나에게는 기억할 거리가 없었다.
기존 회원들을 중심으로 줄이 생겼다. '수영 경험자'인 나와 J는 줄에 합류해 우리의 차례를 기다렸다.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수영해 사라지면서 내 차례가 점점 다가오자 너무 떨렸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어디서부터 몸을 담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에라 모르겠다
킥보드를 두 손에 들고 그냥 물에 빠지듯 담그고 발을 찼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킥보드와 상관없이 내 몸은 가라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킥보드를 제트스키처럼 잘 띄워 가는데, 내 킥보드는 잠수함이었다. 수면 한참 아래 잠수해 있는 킥보드는 제기능을 못했고, 중심도 잡히지 않아 몸이 뒤뚱뒤뚱거렸다. 나는 얼굴이라도 수면 위로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목을 쭉 뺐다.
뭍에서 걸어 다닐 때보다도 구부정한 자세가 되었다. 내 모습을 보지 않아도 매우 우스꽝스럽고 이상해 보이리라는 건 짐작이 되었다.
아니, 아무리 초보라도 이렇게까지 이상하게 가는 사람이 있어?!
몸치로 태어나 여러 분야에서 기이한 행동을 다양하게 창작해 왔는데, 그때마다 내 몸에 또 실망을 한다. 실망해 봤자 어쩌겠는가.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그래도 다행히 발차기를 할수록 잠수해 있던 킥보드가 조금씩 올라왔다.
체력이 많이 달려 가다가 힘들면 쉬고, 또 가다가 힘들면 쉬면서 발차기를 했다.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긴 했다. 라인 끝에서 좀 더 가까운 어느 지점에서 또 한 번 쉬려고 발을 딛는데, 이럴 수가.. 원래 닿던 그 깊이에 발끝이 닿지 않았다!
허..?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어이! 어이!!" (소리가 웅웅 거려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들림)
아까부터 귀에 들리기는 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강사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소리로 인식되었다.
여기까지 오면 안 되는구나!
이 수영장은 라인 끝으로 가면, 어느 지점부터 깊어지는데 그 지점을 모르고 넘어와 버렸다. 뒤로 돌아 수영해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내 몸은 아무것도 못하고 굳어 버렸다. 그런데 그때, 내 뒷덜미를 누가 끌어당겼다.
J였다.
바로 뒤에서 발차기를 하며 오던 J는 내가 발이 안 닿는다는 걸 알아채고(눈치도 참 빠르다), 깊어지지 않은 지점에 서서 나를 끌어당겨주었다.
발이 안 닿고, 놀라고, J가 나를 당겨준 게 다 합쳐서 몇 초 안 될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나는 물도 안 먹고,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안전한 구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J가 조금이라도 늦게 나를 구해줬다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물이 무서워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도 조금 무섭긴 하지만..)
한 바퀴 길게 돌고 나서부터는 오늘 처음 온 초보들이 안전 구역(?)으로 격리되었다. 그래서 깊어지는 지점을 다시 갈 일이 없었는데, 왕초보에서 벗어나 깊어지는 구역까지 수영해야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조금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