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아.
잘 지내고 있지?
한 때는 편지라는 것을 자주 썼던 것 같은데, 굉장히 오랫동안 너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어. 응, 물론 난 잘 지내고 있어. 이곳, 다람살라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어. 이곳의 광경을 잠깐 설명하자면 ㅡ 이 마을의 아침은 보통의 나라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고 있어. 아마 새벽 6시 이전부터 사원의 많은 (머리를 빡빡 깎은) 스님들이 마니차*를 돌리면서 기도를 올려.
달라이 라마의 영향인지 정말이지 작은 티벳과 같은 모습이야.
나는 물론 불교신자가 아니야. 하지만 웅웅 거리는 새벽의 소리에 못 이겨 눈을 뜨지. 그리고 어느새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벽의 맑은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알아. 이것이 바로 새로운 나라에 있는 이방인의 삶이야. 너도 알다시피 지금까지의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오고 있었잖아. 처음에는 이곳에 적응하는데만 몇 달이 걸렸어. 하지만 몇 날 며칠 - 시간이라는 것이 꽤 지나고 나자, 나는 비로소 이제 이곳, 다람살라 ㅡ 의 이방인으로서 이 도시의 공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단적으로 나의 변화를 말하자면 ㅡ 너를 만날 당시에는 휴식시간에는 오로지 커피를 마셔왔지만 최근에는 차(tea)를 즐기게 되었어. 그리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찻잎을 우린 black tea에 우유를 곁들이면 조금 더 훌륭한 맛이 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달았지. 그리고 이 곳에는 얼마나 차가 많은지! 매일같이 새로운 가게에 들어가 아쌈이나 다즐링처럼 전혀 모르는 차를 음미하는 것이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어. 그리고 한 낮에는 낮잠을 자기도 해.
그래 ㅡ 난 생각보다 즐겁게 지내고 있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있고, 그것들로 인해 나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는 기분이야. 그것들은 나의 사고를 지금까지 보다 더 유연하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언제 어느 때든 ㅡ 날 환영하는 기분이 느껴지기도 해.
너에게 한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한 것은 그런 일들 때문이야. 새로운 상황과 일들, 그리고 나로서는 무엇보다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들이 필요했어. 이곳에 와서 나는 한 동안 풀숲을 거닐었지. 오래도록 거닐었어. 내가 머무는 숙소 근처에 야트마한 숲이 있었거든.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웃었어. 그 이후로 산책을 즐겨했었지.
지금 나는 한참 동안을 아무렇게나 걷다가 문득 다리가 아파졌어. 그래서인지 마침 눈앞에 들어온 가게에서 차(예전에 나라면 분명 커피를 시켰겠지만)를 한 잔 시키고 너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어. 최대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말이야.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삶의 무료함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어. 시간이라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 공평하지 않아. 어떤 때에는 너무나도 빨리 지나가버리고 말지.
너랑 있을 때에는 특별하게 더욱 그랬어.
내가 너에게 말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떠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해 ㅡ 너는 (분명) 아마도 놀랐을 테지. 심지어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를 남기지도 못했어. 정말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물론 나는 너에게 늘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왔을 테니까 한편으로 너는 늘 그럴 수도 있다고 예감해 왔을까? 무엇이 되었든 나는 네가 늘 그리웠어.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들이 꿈꿔왔어. 너는 나를 제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너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어.
나는 역시 너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ㅡ
언제든 너의 답장을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