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선택하지 않음.에서 온다.

숲 속을 뛰어나가는 남자와 내면 아이

by 정현주 변호사



아름다운 숲속에 산장 같은 카페에 왔다. 최근 몇 번 해보지도 못한 아끼는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아마 내가 제대로 된 고리에 목걸이를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집 밖으로 나섰던 모양이다.


하필이면 그날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가느라 주위를 더 살피지 못했다. 우산 위로는 바다 소리와 같은 빗방울이 후드득거리면서 떨어졌고, 나는 비를 맞지 않으려고 신경을 집중하면서 크고 무서운 우산에 기대어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숲속을 뛰어나가는 남자 ㅡ를 떠올렸다. 무척이나 드넓었던 아름다운 숲은 어둠이 짙게 드리워졌고, 안간힘을 쓰면서 마지막 빛에 잠시 머물렀다.


남자는 광활한 바람과도 같이 숲속을 뛰어나갔다. 나는 눈을 감으며 이 광경을 너와 이야기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어느 순간 나의 내면 아이 근처로 누군가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상당히 오래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같은 자리에 굳어져 있는 거대한 돌덩이처럼 고요한 상태로 그곳 우물에 기대어 동면 상태로 잠들어 있다. 이곳은 무척 안전하고 편편한 나만의 지대이다. 수 십 년 동안 그 누구도 이곳(또는 이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다(나는 물론 허락한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도록 나만의 높고 견고한 벽을 쌓은 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대화를 나눌 상대를 그리워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독은 등뼈와 같이 완전히 굳어졌고, 외로움은 일상처럼 머물렀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은 평온했다. 간간이 일렁임이 있었지만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는 무풍지대였다.


숲속을 뛰어나가는 남자,는 아주 강력한 한 겹의 벽에 기댄 채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은 그의 지금까지의 삶이 얼마나 고독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단면이었다. 그는 오래도록 이해받기를 거부한 채 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남자에게 표면적인 관계를 시도했고, 그 또한 표면적인 세계에 머물렀다. 때때로 그 세계는 너무나도 당연해서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조차 받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삶이란 많은 선택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고, 일생 동안 여러 번의 고비를 맞는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삶의 중요한 결정이란 대부분 잠든 순간에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듯, 깊이 있는 사유를 거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삶에 오래도록 매이게 된다.


우리는 밤새도록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나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그 생경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즐거워진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들이 지나갔다.


아주 차가운 공간, 고독은 비가 내린 이후의 흩어진 안개처럼 조금 옅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면의 고통은 이면처럼 커져갔다. 삶에는 중간 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걸쳐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마저도 사실은 한 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될 뿐이다.


내면의 상처는 어디에서 찾아오는가?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에서 온다.


나는 깊이 있는 벽 속에 앉아 있음을 다시 한번 안도하며, 투명하고 (견고한) 벽 밖으로 숲속을 뛰어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그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을 앉아 타인을 기다려보기도 한다. 숲속에 내려진 적막이 많은 것을 뒤덮을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내 찾아온 어둠이 많은 것들을 거두었다.


결국 숲 속은 남김없이 사라졌다. 아름다운 풀숲의 냄새도 움직임도 일렁임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전의 광경은 지금의 광경과는 달리 조금 왜곡된 모습으로 남았다. 나는 그만큼 마모되고 소모되었다.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에게 다가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조금 머물다가) 다른 문으로 나간다. 그들은 문을 열고 나가며 때때로 나의 빛을 가져간다. 상처를 덜어가기도 한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다. 나는 단념한 채, 다시 눈을 감고 이곳으로 되돌아오기로 한다.


어느새 - 비가 그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