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n과 대화를 하던 중에, 잠시 나의 학창 시절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나의 20대는 물론 성실하거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의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ellen은 '제적 당한 변호사'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하였다... ).
그 시절의 나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무모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던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타인에게 잘해 주었던 것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힘들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댜.
그 시절의 사진들이 없냐는 ellen의 질문에 문득 생각해보니, 나에게 캐논 카메라가 하나 있었다.
23살경 호주로 떠나기 전, 알바를 통해 당시 거금이었던 30만 원 정도의 돈을 주고 샀던 나의 첫번째 카메라였다.
한 번 타면 20시간은 기본으로 멈추지 않고 갔었던 서호주의 기차를 타고 아들레이드를 횡단하면서 자리에 놓고 내리고, 또 케언즈의 빨간 공중전화기 위에 올려 두고 갔었지만 용케도 잃어버리지 않고 한국으로 가져 왔었던 녀석이다.
그 직후 인도도, 네팔도 함께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결혼을 하면서 나의 짐들은 오래된 캐리어에 몇 년 동안 버려지듯 방치되어 버렸다. 운이 좋으면, 먼지가 잔뜩 쌓인 창고 뒤 어딘가에 그 오래된 캐논 카메라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오래된 짐짝 안에 캐논 카메라의 사진 파일은 cd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cd 케이스가 옅은 갈색이었던 것도, 사진 파일과 오래된 cd 플레이어도, 좋아하던 cd들도 한꺼번에 기억이 났다.
그 것은 아주 짙은 밤의 일이었다. 농밀한 밀도의 깊은 밤에 나는 잠을 자다가 불현듯, 오래된 cd들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래서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창고 뒤에 있는 낡은 캐리어를 열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그 시간에 일을 벌이기에는 엉뚱한 생각이었다. 곧바로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를 했지만, 잠은 내 머릿속에서 달아났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를 되 감아 보고 있었다.
그리고, ellen의 말대로 운이 좋게도 사진 파일들을 찾게 되면 그 시절의 기억들을 되 감아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래전, 아마도 결핍에서 시작된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의 기억들은 대부분 파스텔의 색감이 아니라 흥미 진진한 것들이었고, 무모했던 만큼 지치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행지의 기억들은 한 단락씩 비워져 있다.
나는 공간에서 공간을 지날 때마다, 그 기억이 남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모임'을 만들지 않았으며, '인연'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는 저절로 알게 되었다.
'인연'과 '모임'이란 어차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그라드는 것이다.
삶이란 그 순간 순간의 영원을 즐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이 삶의 '끝'이 머지 않아 다가 온다고 생각할 때,
어쩌면 내가 여행을 하고 있고 '여행의 끝'이 있다는 것을 알 때
그 순간 순간이 각별해 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