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 오기 꽤 오래전부터 나는 두물머리를 다녔었다. 벌써 거의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친구 덕분이다.
어제의 하늘은 상당히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별처럼 남을 것 같다.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달이 휘황찬란(輝煌燦爛)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주위를 가린 구름들도 밝은 달빛을 가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달이 열심히 움직이는 착각이 들었다. 예쁜 달과 깨끗하고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두물머리의 상징처럼 보이는 거대한 고목나무를 둘러싸고 드문드문 벤치가 있었다.
벤치에 앉아 아득히 강물을 바라보니 예전에는 없었던 펜스도 생겼다. 걸어오는 길가 어딘가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카페도 보였다. 친구는 문득 나에게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마치 오래간만에 온 두물머리의 변화처럼.
' 예전에는 네가 한참 방황을 했었는데, 그 이후에 봤을 때도 계속 방황을 하고 있었지. '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그래서 친구는 그 당시에 내가 했던 선택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이 있는데 나는 그 방식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 왔었다고.
' 너는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 내가 알기에 너는 그런 생각을 딱 한 번 했던 것 같아. '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두물머리 벤치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옛날로 돌아가게 되었다.
지금은 십 년이 넘은 공부가 잘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법시험을 공부한 초창기에는 공부가 재밌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다고 불렸던 사법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시험의 내용이나 양도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 내가 과연 합격을 해서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을 도저히 떨칠 수 없었다.
한 가지 만을 바라면서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멈춰있는 일이 무척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참을성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원치 않는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려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원치 않는 사회생활이란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거의 언제나 사회와는 유리(遊離)된 존재였다.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내가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있는 생활을 좋아했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와도 친밀한 감정을 쌓는 일을 바라지 않았다. 결핍으로 가득 찬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방어선도 무척 높았다.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져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실망이나 배신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의 내면을 누군가에게 완전히 드러나보이기에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부족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의 성벽은 견고하고 높아서 그 어떤 이도 나의 안을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옆에 앉아 있으면서 원한다면 그들의 삶에 미끄러지듯 섞여들어갈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나만큼 거대하고 높은 성벽을 쌓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을 제대로 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인생을 내가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삶의 귀퉁이에 잠시 앉아 있다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은 그들 자신도 바라는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의 귀퉁이에 잠시 앉았다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 필요에 의해서. 또는 우연찮게 벌어졌던 일이다. 그 사이에 소유욕이나 욕심같은 감정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선택은 열망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그것은 철저히 필요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었다.
' 그렇다면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었던 거야? '
생각해 본다. 적어도 나의 필요는 아니다. 물론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거나 함께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유연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그토록 친밀해지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필요에 의해서 누군가에게 다가가 본적이 없다.
다시 사법시험 이야기를 해 보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대부분 합격을 한 많은 동기들이 시험에 합격하기 바로 직전을 가장 힘들었던 때로 꼽는다. 나 역시 그랬다. 시험을 합격하기 직전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과 맞물려 주위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힘겹게 버티는 시간을 겪어야 했다. 당연히 공부가 잘될 리 없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채 몇 달이 흘렀다.
그 즈음,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이곳 두물머리에 종종 와서 멍하니 거대한 고목나무와 흩어지는 강을 바라보면서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을 풀었다. 지금처럼 바람이 시원해지는 가을 저녁, 열심히 산책을 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신림동에서 남양주 두물머리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때는 그것도 잘 알지 못했다.
어느 겨울,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한 번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도로에서 움직이지 못할 뻔한 적도 있었다.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쏟아져내리는 폭설 덕에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언제나 날씨 체크를 하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탓에 벌어진 사고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걱정 근심도 없이 어두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하얀 눈들이 비상식적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눈들이 쌓이고 쌓여 많은 것들을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버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달이 유난히 밝았던 지금, 나는 십 년 전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친구가 말하는 내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에 말에 따르자면 나는 지금 많이 변했다. 그때에도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다. 나는 옛날부터 지나치게 나의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소유하고 싶거나 갈망하는 것, 내가 선택하는 이유 등등에 나의 마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 스스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지점이 변한 지점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어쩌면 내 마음의 틈에서 시작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틈. 을 가지고 태어났다. 완전하지 않은 것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틈을 메우려는 노력을 한다. 어쩌면 평생에 걸쳐 그런 시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틈. 을 그대로 둔다. 그것을 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틈을 함께 바라보거나 메우려는 노력에 동참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종종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틈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그들의 삶에 관여했으니 어쩌면 무척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들의 틈.을 메워줄 수 없다.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타인의 삶의 귀퉁이에 잠시 앉아 있다 가는 일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눈에 띄어서는 곤란하다.
나의 삶이란 그렇게 가늘고 길게 햇볕을 피해 도망치는 나방처럼 - 사소(些少)하다. 틈.이야 사실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우리 모두는 완전해질 수 없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후회를 하지 않을만한,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지만, 선택을 하는 과정은 개개인 모두에게 전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