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는 깨어났다. 빈손을 가지고 깨어난 상태로 그대로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지켜봤다.
몰입(flow)의 순간,
나에게 더 이상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세워둔 기록에 대한 도전과 그 결과만이 내 앞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전까지의 나의 삶은 무기력하고 루틴(routine) 한 삶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 호불호가 없었다고 볼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나의 욕망보다는 타인의 욕망을 바로 보는 것에 애를 썼다. 따지고 보면, 지난날 동안 나라는 자아가 원하는 것이 명확하게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는가? 어쩌면 나를 드러내지 않고 사는 삶은 사회적으로는 무척 효과적으로 나를 보호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의문이 들었다.
' 나는 행복한가? '
그리고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가? 어제와 오늘과 미래가 계속 되풀이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만족하는가? 그러다가 불현듯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이 갑작스럽게 나의 삶이 끝이 나게 된다면, 나는 그때에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물론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알게 되는 법이다.
삶이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내가 정말로 이루고 싶은 계기가 생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몰입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인생이 종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완전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점차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 외의 것들은 후순위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나는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을 일렬로 나열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급하게 해결해나가야 하는 일들 순으로 우선순위를 매겼으며, 여간해서는 그 순위를 바꾸지 않는 삶을 살았다. 나름대로는 세심하게 그 과정에 집중을 하면서 시간들을 보내왔다. 어쩌면 무척 균형적인 삶이었다.
별다른 좌절이나 불안이란 감정이 없는 대신, 편안함과 자유로움도 망각되었다. 쾌락과 만족감과 같은 황홀한 감정들은 전혀 없었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내가 가진 감정들이 실제로 내가 느끼는 감정인지 확신하기 어려워졌다. 말하자면, 나는 타인의 평가나 인정에 따라 나의 감정을 정의 내리게 된다. 가령 내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평가가 생각보다 긍정적이라면, 나는 기꺼이 나의 삶의 일부를 꺼내어 그 일에 헌신할 수 있고, 또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인가가 빠져있는 안정감이었다. 선택이 없는 삶이었다.
절대적 몰입이란 칙센트미하이란 헝가리의 철학가가 발견한 개념이다. 그는, '행복한 인생은 어떤 것일까'라는 문제를 가지고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많은 전문가들이 몰입의 영역을 거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이란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불안'의 영역에서, 이후 '각성'의 영역을 거쳐, '절대적 몰입'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이후 몰입의 영역을 거치다 보면 결과적으로는 많은 기술을 습득하게 되어 '자신감'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러한 '몰입'의 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몰입에 빠질 수 있는 상태를 결정짓는 과제(목표)의 수준과 자신의 능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목표의 난이도와 자신의 능력이 중요한 것이다. 이는 좌절과 극복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건이 된다. 또한 몰입의 마지막 단계인 '자신감'의 영역에서 옮겨가서 '안정'영역에 빠지게 되면 비로소 편안한 상태가 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즉 자신의 능력과 그것을 이루는 목표의 난이도는 계속 움직이는 것이며 몰입을 계속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주체적으로 바꿔 가야만 한다.
몰입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과정 속에서 어떤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것을 이루었을 때의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결과보다는 몰입의 과정에서 가장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부분 지금의 현상이 지나고 나서야 많은 것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내가 느끼는 난관과 불안함, 어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오로지 나를 해하는 것만은 아니다. 만약 내가 나태함과 무기력에 빠져 루틴에 갇히는 것보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노력의 과정 속에서 나는 사실은 가장 행복에 가까운 길로 들어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