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벗어나 외부로 통하는 길을 탐색하려는 생각을 품기 시작할 무렵 나는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기 전에 오래전 친구와의 대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간만에 만난 그는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 그는 무척 평범해지고 좀 더 사나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으며 야생에 나와 있는 육식 동물에게서 풍기는 거칠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모습 어디에도 일종의 공격성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길이나 태도는 오래전보다 한결 부드러웠고 솔직하였으며 인간관계에 익숙해진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젊음의 시절이 지나가고 난 뒤 찾아오는 일종의 여유,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오는 배척감 같은 것들이 함께 감돌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의 모습을 관찰했다. 한 움큼의 시간이 베어 나가는 동안,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모시켰는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고뇌를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괴로움이었다.
좀 더 자세히 적어보자, 그는 원래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말하자면 외국인이었던 셈이다.
' 나는 어린 시절 독일에서 살았어. 얼마나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독일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갔던 기억만 나. 그리고 몇 년을 그쪽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지. '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르게 적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각별한 기억으로 남거나 큰 영향을 준다. 그는 이상하게도 독일에서의 생활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자신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독일 뮌헨의 지독하게 좁았던 아파트먼트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하자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던 생명체가 무엇인가를 이룩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담고 채워야 하는 시간에 지나치게 넓은 지점까지 가버렸던 셈이다.
' 그러니까 한 사람이 완전히 성장하려면 자신의 뿌리를 인지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했던 거야. '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낡은 아파트먼트에서 풍기던 우울감이었다. 뮌헨으로의 여행은 당연히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속해있는 가족과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유학길에 동행해야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가능했다면 몇 년 정도는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있는 선택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전학생의 신분이 되어있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은 자신이 속했던 무리를 떠나 다른 무리에 속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선천적으로 눈치가 빨랐지만 이미 형성된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요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가 완전하게 단단한 자신의 뿌리 ㅡ가 형성된 상태에서 잠시 다른 곳을 다녀온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사실 대단히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아주 연약한 기반 위에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뿌리를 형성하고 만들어나가는 편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대단히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들은 뮌헨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언어도, 말도, 문화도 말이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빠르게 그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그렇게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지점에 그 기반은 단단해지지 않은 채로 성벽을 쌓았다.
유년 시절의 뮌헨에서의 기억은 그에게 결과적으로는 큰 틈을 주었지만 그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틈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틈이 생겨버린 덕분일까? 그는 어딘가 평범한 것에서 조금 벗어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류의 것들은 이미 단단하게 굳어져 끝나버렸던 것이다.
어느 흐리고 바람이 부는 가을날,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생각했다.
' 그리고 나는 많은 것들에게서 완전히 탈피했거나 또는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
그래서 그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특별한 것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미 많은 것들이 평범하지 않다. 그는 언제나 평범한 선택을 했다. 때때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고르고 그것들을 키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것, 그것은 그의 자식뿐이었다. 그의 삶에서 결핍감을 채우는 것은 오로지 그의 자식뿐이었다.
젊음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다르게 흘러간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이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지만 나의 주위에는 새로운 것들을 기꺼이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늘 있는 편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왜 이곳에 앉아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다른 세계와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 나의 뿌리는 간단해. 그것을 의심할 만한 것들이 없어. 나는 분명히 이곳에서 태어났지. 하지만 무엇인가 낯설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내 마음속에 뿌리내렸지. 그 계기라고 할 만한 것들도 사실 별로 없어. 그 시절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게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어. '
그는 오랜 기간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그는 평범한 것들을 택하는 평범한 세계에서 이미 어딘가 이질적으로 변해버린 그 틈. 을 도저히 메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그가 속한 세계의 것들과 표면적으로는 제대로 어울리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 나는 체념한 은자처럼 조용히 살았어. 나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지. 그것은 내가 안정을 추구했다기보다는 내가 이 세계를 이해하고 또 나를 그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야. 나는 내가 속한 것들을 긍정적으로 보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고립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떤 사람들에게 나는 접촉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보였고 능숙해 보였지만 속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비쳤거든. '
그때의 경과를 말하자면 그렇다. 그는 객관적으로는 많은 것들을 이루었으나 사실은 형편없이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런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가 속한 세계는 무척 위험해 보였다.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마음을 꺼내 보일 수 없었고, 또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나는 너에게 상기를 시켜주려고 온 거야. 이 이야기는 너에게는 이미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르고 이미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나로서는 중요한 일이야. 그 시절 나는 오랜 기간 혼자 있었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말로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했지. 그런 시간들은 분명 나의 길이나 정신에 대한 깨달음을 알게 해주기도 했어. 뮌헨에서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혼자서 가는 것은 한계가 있어. 우물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든지 어떠한 종류의 명상이나 유희에도 그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어. 상상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처럼. '
나는 그의 깨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마침내 만났을 때에 느낄만한 동경을 느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 자 이제 그만 가기로 할까? 다시 한 번 만나자. 그리고 너의 이야기를 좀 더 들려줘. '
그는 꿈 속에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