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주 변호사 Feb 15. 2024

내가 머문 일그러진 세계,

오로지 그때를 기다리며 잠이 든다.

남양주에서 개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법률사무소 봄을 열고 나도 남양주에서 산 지 벌써 2년이 넘은 것 같지만 그전까지 나는 남양주와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경기도에서 산 기억도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남양주에 있으면서 이곳이 1Q84에서 나오는 두 개의 달처럼 일그러진 세계가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누워있는 붉은 달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맑고 쾌청한 밤하늘에 아무것도 떠 있지 않은 날이 이어져,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내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잘 판단이 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이곳에서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기에 이르렀다. 나는 남양주에 와서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생각의 변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하면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볍고 얇아져 처음에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은 과거로 갔다. 오래전 내가 그냥 흘려보냈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사람들과 내가 놓쳐버렸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생각났다. 바빠질수록, 내면의 나는 무척 고독해졌고 존재가 가벼워져 더 이상 이를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늘 그렇듯이 나는 나의 존재를 효과적으로 숨겨야 했다. 어느 날 오래간만에 만난 나의 친구가 ' 나의 생각은 금과 같지만 그것을 실행하기에 너무 약하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 나는 최초의 나의 생각을 믿고 존재를 숨겨야 했다. 


눈을 떠 보니 내가 있는 곳은 처음 보는 환경이지만 익숙한 곳이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의 끝이 어디든 결국 나는 이곳에 다다르는 것이다. 체념한 나는 다시 달팽이처럼 이곳, 일그러진 세계에 잠시 지친 몸을 기대어 몸을 말기 시작했다. 외부의 공기와 나를 차단하고 잠시 쉬기로 마음먹는다. 하늘은 맑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으나 나에게 봄은 아직 멀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가급적 이곳에서 오래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감정이 없는 이 세계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남김없이 앗아간다. 고독은 짙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자만 남았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이제 이곳 세계의 문은 닫히고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로지 그때를 기다리며 잠이 든다.  


2006. 티벳 라싸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쇼팽 발라드1번의 다음 곡으로 프렐류드 16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