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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주 변호사 Feb 20. 2024

이제, 망각(忘却)의 바다에서 나는 묻는다

너는 이제 어디로 가는거니?


안녕, 오래간만이야. 


아침에 눈을 뜨니 온통 안개밭이었어. 바로 앞의 사물조차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우유같이 흩어지는 안개들로 인해 나는 내가 서 있는 곳을 잠시 구분할 수 없었지. 하지만 나는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찾았어. 최근 듣고 있는 곡은 오래된 jazz 소품들이야. 어떤 날에는 프랑스 샹송을 듣기도 해. 그런 곡들을 듣고 있자면, 언젠가 홀로 길을 떠났던 그날 포르투갈 상벤투역을 걸으면서 보았던 투박하고 비에 젖어 미끄러운 돌바닥과 비릿한 비 냄새가 떠오르지.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그 장소로 다시 되돌아가 있어. 무척 그리운 기분이 들어.  


어느 날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실제로는 내 고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 있었어. 너는 언젠가 혼란스러운 나에게 손을 내밀고 같이 가자고 했었지.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어. 그때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잘 몰랐어. 그리고 나는 그 거절의 의미에 대해 이곳에 앉아 오래도록 생각했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이야. 한참 후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깨달았을 때, 그때는 정말로 너무 늦은 밤이었어. 


지금은 그래. 알고 있어. 나는 이미 고향을 잃은 이방인(異邦人)이었지만, 이곳 광활한 몽골의 언덕에는 나와 같은 이방인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것을. 어쩌면 앞으로의 삶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스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더 기대하지 않게 된 것도 사실이야. 시간이 가면서 나의 외로움은 굳어졌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어. 하지만 너는 나와 같은 이방인(異邦人)으로 태어나, 고향을 잃은 다른 자들과는 달리 너만의 성을 쌓고 있었지. 우리 이방인들은 아주 운이 좋아야만 서로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은 정해진 운명처럼 일어나는 일이야. 나는 정말로 운이 좋았던 거야. 


이제, 망각(忘却)의 바다에서 나는 묻는다. 


' 너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거니? '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너는 이 세계에서 잘 적응한 것으로 보여. 너에게는 과거와 달리 많은 소중한 것들이 생겼어.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내면의 너 또한 한철의 파도가 지나간 잔해를 바라보듯 평온한 것으로 보여. 그렇다면 너는, 네가 머무르고 있는 그 세계에서 드디어 너의 해답을 찾은 거니? 네가 가기로 마음먹은 그 세계에서 너는 너만의 닻을 올린 것인지, 이제는 평온을 찾았는지 궁금해. 오래전 보았던 너의 눈은 네가 앞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곳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었지. 하지만 너무 어렸던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웠어. 

어쩌면 그 아름답고 황폐한 세계에서 사실은 내가 너를 구원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내가 구원을 원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지. 오로지 나만이 너를 구원해 줄 수 있었어. 그리고 너는 오래도록 그것을 기다렸어. 


그때의 너를 구원해 주는 길만이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지. 그것이야말로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 그리고 나 역시, 이제는 많은 이들의 필요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의 가치를 찾고 있어. 


그래서 너는 어디로 가는 거니? 


너의 길, 그 끝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숱하게 흩어진 위성들, 그 덧없는 인연들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다시는 만날 수조차 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나는 흩어진 안개와 같은 이 들꽃 더미들 속에 오래도록 고독했을 너를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써. 또 앞으로 오게 될 고독들을 위하여. 


나는 이제 길을 찾았어.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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