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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의 슈베르트는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한다.

by 정현주 변호사



상념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정처없이 길목을 거닐다가 테이블이 몇 되지 않는 작은 커피가게 앞에 멈춰 선다.


이 가게에 온 것은 정말로 우연에 가깝다.



문은 원목에 가까운 짙은 고동색으로 칠해져 있고, 바람을 막을수 있도록 가장자리는 봉해져 있다. 그리고 두꺼운 유리 창문이 창틀사이로 있어 내부의 모습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열자 따뜻한 바람이


훅 들어오고, 동시에 문 위로 달려있던 낡은 은종이 몸을 흔들리며 울린다.



낡은 나무 문은

사실 바깥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문이라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된다.


마치 이 커피가게는 따뜻하다. 누구든 들어올수 있다. 라고 광고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쨌든 골목길 틈바구니 사이에서, 멀리서는 도저히 볼 수 없이 스쳐 지나갈만큼 간판도 없이 작은 커피가게를 지나가게 되었고, 그 따뜻한 느낌에 취해 문을 열게 되었다.






문을 열자 히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느낌이 내 얼굴 사이로 번진다.


나는 추위에 볼이 얼어 붙어 있는 상태였다.


창가 바로 옆은 추울것 같아서, 사람이 없어 보이는(가게 안에는 이미 사람이 거의 없다.) 창가 바로 옆에 자리를 기대 앉는다.


나는 가방을 열고 일기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진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때 마침, 낯익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연주자는 피아노를 어루만지고, 또 필요하다면 피아노를 지배하는 소리를 만든다.


그 선율은 너무나도 낯이 익고 감미로워서, 나는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본다.



랑랑의 슈베르트다.





창밖에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이미 눈은 내리지 않지만, 눈이 오고 난 잔해와도 같은 얼음들이 벽 사이사이로 붙어있다.

그리고 정말로 추워보이는 거리에는 바람도 한 점 불지 않는 어둠이 깔려있다.


갓 나온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음악을 듣다가 나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어느 때, 음악을 듣던 그 순간들을 떠올린다.


눈을 감으면,

마치 태엽을 감듯 눈을 감고 있었던 그 얼굴이 떠올라서 마음 한 켠이 저릿해 진다.


그것은 추운 겨울날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어붙은 내 몸에 따뜻한 커피가 들어가는것 같은 저릿함이다.


반드시 필요하기도 하고,

또 아프기도 한 그런 느낌은 나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지금 이순간처럼 그 순간이 생생한 것이다. 마치 그 모습이 현재에 실존하는 것처럼.


랑랑의 슈베르트는 그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은종이 한번 더 울리고, 두꺼운 패딩을 껴입은 커플이 들어온다.


그들은 내 바로 옆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난 단 한번도 그 쪽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턱을 괴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랑랑의 피아노 선율은 이제 두런 거리는 말소리에 섞여 들어온다.

나는 그것을 차단해낼 자신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소음은 그 선율을 더욱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한다. 적어도 내 귓가에는 그렇게 들려온다.


때마침 식어가는 남은 커피를 바라보다가, 나는 갑자기 견딜수 없이 슬퍼진다.


그래서 지금까지 써 내려간 일기를 읽기 시작한다.


내 뱃속으로 퍼지는 따뜻한 커피의 향이 천천히 사라질때까지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나의 기록들을 읽기 시작한다.



기록들은 두서가 없다.





여행을 가기 한달 전, 나는 절반 이상 남아 있었던 주황색으로 된 일기장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되어 휴대하기 좋고 무난한 진회색의 노트로 일기장을 바꿨다.


덕분에 나는 일기장을 휴대하기 쉽게 일기를 들고 다니게 되었고 어디서든 글을 쓰게 되었다.


멈추지 않고 써내려간 글들은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들이 겹쳐보인다.


그리고 여러 군데에서, 나의 감정은 소모되고 마모되어 간다.



그리고 조금도 기대하고 있지 않은 지점에서 추위가 찾아온다.


그 때 은종이 다시 한번 울리고 다른 손님이 들어온다.

이 작은 커피 가게에, 사람들이 하나 둘 차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일기장의 글을 읽어내려간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

그들은 나와 같이 같은 온기를 찾아 왔고,

이제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앉아 있는 곳에서 가볍게 날아오른다.



그러자 나의 심장은 조금 더 빨리 뛰기 시작한다.


이미 바닥을 보인 커피는 내 뱃속을 천천히 순회한다.


이미 늦은 밤이지만,

다음 날의 해가 뜨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과도 같이, 나는 랑랑의 슈베르트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은종이 울릴때마다 흔들리는 그 얼굴은

나의 파도와 같다.


랑랑의 슈베르트가 끝이 나는 순간,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런 이후 나는 조용히 발이 땅에 닿고

그와 동시에 모든 감정들을 따뜻한 온기 속에 다시금 끼워넣기로 한다.


이윽고,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며 길을 나선다.

랑랑의 슈베르트는 늘 그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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