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금요일이다. 하루는 경주 지원을 오가고, 마침 들어온 인터뷰지에 답변을 달아 보냈으며 남양주 지원에서 조정을 하기도 했고 틈틈이 의뢰인들과 또 친구들과 전화를 했다. 상담들을 했고 오래간만에 연락이 온 지인과 만나기도 했다. 난 주로 늦잠을 잤다. 오전에 일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꽤 늦은 시간에 퇴근을 했다.
어느 날, 하늘을 수놓는 하얀 눈들을 봤다. 날은 무척 추웠고 바람은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하지만 이 추위와 겨울이 어느 순간 힘을 잃어버렸음을 나는 알았다. 주로 몰입을 계속하던 나는, 어떤 날에는 맥없이 몰입을 풀고 이 세계에 바스러져 버린다. 틈도 없이 바스러져 버린다. 종국에는 소멸해 버린다.
경주지원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하얀 눈밭과 성근 눈송이를 보고 있었는데, 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낯선 도시에서 떠나 낯선 도시로 간다. 핸드폰은 부지런히 울리고 있었지만 나는 일부로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바람이 세차게 들어오는 통로 속의 비좁은 간이석에 앉아 있었지만 문득 무거운 잠이 쏟아져 내렸다. 어느 순간 두툼한 기록을 보다가 말고 잠이 들어 버렸다. 꿈속에서, 나는 하얀 눈이 쏟아져 내리는 바로 옆 낯선 도시위에 누워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입에서는 하얀 김이 나오고 손발은 새하얗게 얼어 버렸다. 나는 뒤척이며 일어났는데, 하늘과 땅이 다 같은 눈밭이라 위아래의 구분이 없었다. 나는 문득 심한 한기를 느끼고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았다. 내 등위로도 눈이 소복이 덮이고 있었다. ' 이것이야말로 눈사람이다. '라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 낯선 도시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매어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완연한 혼자가 되고 싶다고 되뇌었던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나는 어처구니없는 갈망을 느꼈다.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이곳 어딘가에서 눈사람이 되는 꿈을, 그렇게 완전히 사라지고 떠나버리는 꿈을. 사람들은 내가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를 알 수 없을 터였다. 그 깊고 넓은 하늘은 구름 속의 점처럼 나를 작게 만들었고 나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