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주 변호사
이곳은, 지금 이 시간에도 배를 띄울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오늘 오전부터 서울로 가기 위한 배를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기상악화로 인해(정확하게는 풍랑주의보로 인해) 오늘은 저녁까지 모든 배가 결항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심지어 내일도 모든 배가 결항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섬은 나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이처럼 붙들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아, 내일 생방송인데?)
나는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차를 타고 폐쇄된 동천항에서 한 시간 정도를 머물다가 만약 배가 뜬다면 최소 2~3시간이 더 걸릴 거란 생각에 노화도에 있는 카페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의 시간은 낮 12시 정도였다. 늘 그렇듯이 사는 환경은 달라질 수 있고 날씨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마음을 버리지 않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으나, 카페의 주인은 '윈디'라는 어플을 나에게 손수 보여주며, 날씨는 2일 전부터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 앱에는 이미 모든 배가 결항으로 떠 있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진 기름을 채우러 간 주유소에서, 이 섬에서 최소 30년은 살았을법한 헛헛한 연륜의 주인아저씨에게 '이런 날씨도 갑자기 바뀌어 배가 뜰 수도 있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무심히 하늘을 잠시 쳐다보던 그는 ' 오늘은 배가 안 떠요. '라는 명확한 확인 사살을 했다. 그는 절망한 나의 표정을 보고 안타까웠던지, 오늘 오후 5시가 지나 (의미는 없지만) 배가 뜨는지 항구에 전화를 해보라는 상냥한 조언도 함께 덧붙였다.
나는 다시 카페로 돌아가, 비공식적인 루트든 뭐든 통통배라도 타고 육지로 가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어쨌든 완도로만 갈 수 있다면 밤새도록 차를 타고 달려 생방송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의 우울한 얼굴을 보고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더니, 나에게 포기를 하라는 말을 전했다.
' 어쩌면 내일 오후쯤에는 배가 뜰 수도 있어요. '
절망한 나는 테이블에 앉아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에 종종 그랬듯이, 책상 위에 손을 포개고 그 위에 머리를 대고 한참 동안을 누워 있었다. 괴로운 마음에 한참을 그렇게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나는 희망을 놓을 수 없어 계속 카페의 창밖을 쳐다보았는데, 회색빛의 하늘은 맑아질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비는 거세졌고, 오래전 보았던 호주의 더운 나무들과 닮은 그 이름 모를 나무들은 흩날리는 거친 바람에 사정없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하늘은 이미 회갈색 구름으로 가득 차 있고 바닥으로는 소나기처럼 이리저리 비가 내렸다. 바람은 동서남북으로 불어와서, 어디든 갈 수 없게 만들었다.
아아, 나는 그 망연한 광경을 쳐다보며, 처음으로 방송 일정 바로 전날 한국으로(아니,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을 잡으면 안 되며, 적어도 그 하루 전날 가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명제를 마음 깊이 받아들였다.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음 날 있을 생방송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기에, mbn 생생정보마당 작가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나의 갑갑한 상황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렸다. 결국 내일 방송은 내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는 이완수 변호사님이 대신하여 나가시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한편 나는 도대체 언제 육지로 나가게 될 것인가, 아니 돌아갈 수는 있을 것인가. 거센 바람속에 갇힌 나는 점차 자신이 없어졌다.
이곳에서 나의 집은 너무나도 멀다. 돌아가는 길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들려오는 이 비정상적인 바람 소리와 도저히 배를 띄울 수 없다고 여러 번 언급된 이 거센 파도 소리는 나의 불안한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