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소설에 관한 이야기
언젠가 혼자 사는 아저씨 작가라는 컨셉으로(연령대는 40대 후반이었던 것 같다), 열심히 소설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때 20대였고 나의 아이디는 늘 익명이었으며 소설 속 화자는 늘 남자였다. 생각해 보면 나의 모든 글의 화자는 단 한 번도 여자였던 적이 없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 또는 작가와 같이 시간이 많은 한량이었으며 한 여자를 열렬히 좋아하는데 늘 짝사랑이다. 그 짝사랑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작가로서 함께 마주 보며 마음을 나누는 사랑을 그리기에는 나는 이곳, 현실 세계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떤 글에서는 버스 정류장에서 짧은 머리를 한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같은 정거장에서 내려 무작정 그녀를 따라간다(그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용기 있게 말을 건다. 또 다른 글에서는 '코르티카'라는 섬에 우연히 정박을 하는데, 우연히 섬에 살고 있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코르티카'라는 섬은 지도에 없는 섬으로, 그들은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다른 글에서는 화자가 bar에 앉아 조니워커를 마시며(참고로 나는 위스키를 잘 모르며, 그때까지 조니워커를 마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얇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물론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을 시작하지만 주로 화자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하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아무런 결말이 없이 어느 지점에서 멈춰버렸다. 마치 타다 만 담배의 꽁초처럼. 그래서 그들의 사랑의 결말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그동안 나는 어딘가 많이 다르고 조금 특별한 곳에 있었다. 한때 너는 그런 나를 보며 우주비행사라고 했었다. 언제든 이곳,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날아갈 수 있는. 그리고 너는 말했다. 떠날 수 없는 많은 지구인들이 우주비행사인 나를 우연히 발견하면, 동경하거나 사랑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사랑을 믿은 적이 없다. 그저 달뜬 열정들과 타협과 위안들을 사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그저 오래도록 고향을 찾으며 그 무료한 시간들을 글로 적고 있었을 뿐이다. 그 글들은 어떠한 목적도 없이 흩어졌으며 대부분의 경우 어떤 형태로든 남지 않았다. 그 기억들과 시간들은 오로지 내 마음속에 남겨졌을 뿐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는 결국 이곳에 내 고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무용한 짓을 그만두었다. 그러니 내가 우주비행사라고 했던 너의 말은 어느 정도 맞았던 셈이다. 하지만 나는 작은 계기로 이곳, 지구에 머물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평온하며 아름다움에 가까운 삶을 보낼 수 있을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희망을 보았는지도.
그러니 그녀들을 사랑하는 나의 조각과도 같은 그들과, 그녀들의 이야기도 이제는 조금 색채를 달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