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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로가는 중이다.

'실체'와 '달로가다'의 세계

by 정현주 변호사


나는 오래전 '달과 6펜스'를 읽고 '달로가다'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달로가다'는 6펜스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자신을 찾는 구도자가 되어 달로가기를 희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그전에도 '달로'라는 아이디로 많은 글들을 썼는데, 대부분은 여행기에 가까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방황하는 시절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곤 했다.


눈을 감고 여행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늘 뜨겁고 건조했던 햇빛과 매캐한 흙먼지가 떠오른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던 베트남 하노이의 오토바이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이름 모를 카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일기인지 시인지 알지 못할 글들을 쓰던 나의 흔적들, 수없이 타던 외국 비행기들이 떠오른다. 나는 인도의 다람살라를 좋아했고, 다즐링의 안개 낀 언덕을 좋아했으며 불가리아의 플로브디브를 좋아했다. 그 많은 시절 속에는 어떤 장면 장면을 스냅으로 엮어 놓은 듯한 기억들이 멈춰 있는데, 그 많은 순간을 언제나 나는, 나의 마음을 충실히 채워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붉은색 4인실의 기차가 자주 떠오른다. 모스크바를 떠나던 그 밤의 시간, 나는 빠르게 뒤로 사라져 버리는 이국적인 장면들을 바라보며 내 시간들이 뒤로 물러나고 있음을 절감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고독한 밤들이 지나갔다. 그때의 나는 시간을 감는 새가 되어, 손톱 달이 떠 있는 그 길고 긴 고독한 밤 속에 멈춰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고도 많은 일들이 반복되었다. 해는 뜨지 않았고 나는 외로운 세계에 묻혀 있었다.


어떤 날은 연인을 기다렸고 친구를 기다렸으며 구도자를 찾았고, 삶의 방향을 찾았다. 어떤 경우에는 살아나가야 할 이유를 찾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몸을 최대한 말고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눈을 감으며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이 먹먹한 밤의 세계와 적막함과 추운 것들에 오롯이 몸을 맡기고 떠 있는 것이다. 그곳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간들이 소멸하고 많은 것들이 변하였으며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마치 큐브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과정을 거쳐 다시 큐브로 돌아오는 것처럼, 과거의 나는 나의 본질과 방향성이 '달로가다'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림자를 분리한 뒤, 완전한 나를 찾고 6펜스의 세계에서 명확하게 달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이 바로 실체가 머무는 세계, 내가 바라는 본질적인 세계다. 나는 그 항해를 위해 다른 곳을 떠나온 것이다. 이제는 명확하게 그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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