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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스푸트니크Спутник를 찾고 있지.

내 삶의 동반자

by 정현주 변호사



테니스 레슨을 받은 지도 벌써 2달째가 되어간다. 그 사이, 늘 그렇지만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

오래간만에 만난 선생님과는 한 시간 정도 담소를 나누었다. 그날은 무척 날이 좋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청한 느낌이었고, 봄이 물러가고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오기 전 찾아오는 선물처럼 아름다운 날이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길게 샤워를 하고 오랫동안 머리를 말린 다음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플리츠 원피스를 입었다. 그리고 언젠가 면세점에서 산 꽃과 날 모양의 귀걸이를 했다(나에게는 양쪽이 다른 귀걸이가 상당히 많다). 긴 머리를 말릴 때, 나는 문득 머리를 귀밑으로 자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한다. 늘 시간을 들여 말리는 머리를 불현듯 잘라버리면 어딘가 나의 실체도 바뀌어 버리지는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갈 준비를 마친 나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다리를 건너 오랫동안 걸을지 아니면 지하철을 탈지 잠시 고민한다. 나는 걷기를 선택하고 양산을 챙기지만, 다른 무엇인가를 하다가 걷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놓치고 만다. 하지만 바로 지하철을 타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커피를 마실 겸 역 앞 카페에 들어갔다.


이곳 카페는 몇 달 전에 처음 와 본 곳이었다. 나는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늘 그렇듯이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계란빵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시간은 이미 한낮을 넘어갔다. 카페에는 가장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이 유유자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의식적으로 주위의 소음을 차단한다. 가방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낸다. 이어폰을 꽂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주위의 소음을 차단한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것이 없다. 음악도, 강의도, 유튜브 영상도 그 무엇도 선택을 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내 마음을 끌만한 것이 없다.


나는 커피를 마시고 빠르게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어디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개찰구를 통과해 계단을 내려간다. 마침 도착한 지하철을 타고, 늘 그렇듯이 빈자리가 많음에도 출입문 근처에 선다. 내가 탄 지하철은 덜커덕덜커덕 소리를 내며 한강을 건넌다. 어쩌면 양산을 쓰고 걸을 수도 있었을 긴 다리이다. 아름다운 햇빛은 강의 표면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마치 은어의 비늘처럼,


걸었다면 무척이나 길게 소요되었을 그 시간을 지하철은 단숨에 지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바깥을 보고 있지 않고 두 손에 쥔 핸드폰에만 갇혀있다. 아무것도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런 사람들을, 빛나는 바깥 풍경을,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이 장면들을 객처럼 바라보고 있다.


오래간만에 만난 선생님과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 너무 완전체로 가지 말고 불완전한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함께 지내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덧붙이신다. 그 말은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하지만 나는 곧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2.

어느 날 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날은 바람이 꽤 세차게 불었고 흐린 날이었으며 나로서는 완전히 에너지가 빠져버린 날이었다.


나는 테니스 레슨을 마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린다. 우리는 하나이로에서 만나 함께 생면으로 만든 파스타를 먹었다. 나는 늘 이곳에서 부라타 치즈와 함께 나오는 딸기와 새우가 들어간 파스타를 먹는다.


낯설고도 친숙한 공간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공간의 색을 완전히 바꾸곤 한다. 나는 너를 보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문득 내가 지쳐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 왜 우리는, 동조하지 못하는 것일까, 상대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


나는 자조하듯 말했다.


' 사랑이라는 가장 익숙한 감정은 상대가 속한 세계를 동경하는 것과 비슷해. 타인을 알고 싶다는 본능적인 마음,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 종국에는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하지만 어떤 이들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도 해. 물론 그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하겠지만 말이야. '


우리는 동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찾는 것들과 분명하게 원하는 것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오래전, 나는 부다페스트에 갔었다. 우연히 들어간 성당에서 처음 들은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이 아름다움의 감정을 어떤 형태로든 남긴 다음 너에게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감정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흔적을 남긴다. 마치 오랫동안 걸려 있는 낡고 닮은 액자의 한 부분처럼. 그때의 나는 늘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내가 느끼는 그 섬세한 감정들을 모두 기록하곤 했다.


한때, 나는 무모하게 그 시간들을 견뎌왔다. 눈을 감으면 느껴지는 셀 수 없이 많은 밤들을 나는 기억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나는 내가 전혀 모르거나 또는 알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늘 좌표를 잃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왔음에도 모든 것은 어느 순간 타다 남은 재처럼 희미해지곤 했다.


돌아와서, 나는 오래전 내가 썼던 시를 본다.


떠나고 남은 것들에 대한,

그리고 선생님이 말한 나에게는 없는 여운이라는 것에 대하여.



3.

새벽, 어김없이 다시 눈이 떠졌다.


이 시간의 간극은 나를 몇 달 전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깨우고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머물고자 했던 것들과 또 내가 떠나온 것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래전 너가 나에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 너는 진짜가 아니면 닿을 수 없어. '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진짜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들 본연의 모습을 깰 수 없었어. 다들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도 허무한 약속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외로운 모습으로 각자의 삶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위성처럼 삶을 살아가고 있어. 나는 갑자기 작별을 고한 채 나그네처럼 곁을 떠나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의 떠남. 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대의 선택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나에게 남는 미련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여전히 스푸트니크(Спутник)를 찾고 있지.

그런 희망과 절실함과 전념이 없이, 어떻게 이 우주 같이 캄캄한 삶 속에서 살아 숨쉬며 존재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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