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럽다. 너무 많은 사건 사고들로 마치 불확실한 세계의 한가운데 놓인 것만 같다. 나는 보통 주위에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최근 크고 작은 문제들은 내 바로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보지 않으려고 해도 이러한 사건들을 나는 어쩔 수 없이 목도하기도 한다. 이 문제들의 조짐은 이미 작년 말부터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무척 기묘한 날이었다. 출근을 하여 사무실 노트북을 켜니 갑자기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혹시 몰라 모든 코드를 바꿔서 꽂아보았고 전기가 나갔는지도 확인해 보았는데 전혀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노트북 또는 충전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아 근처에 lg전자 수리점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다행히 사무실 근처, 몇 달 전 남양주 지청장님과 오찬을 했던 '일광'이라는 음식점 바로 옆에 lg전자 수리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산책 겸 슬슬 걸어가 보기로 했다.
' 이유는 모르지만 단선이 되었는데요? 충전기가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
lg 수리기사는 친절하게 충전기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고 하며, 나에게 새로운 충전기를 사라고 했다. ' 그런데 문제는 노트북과 색깔이 다른 검은색만 남아 있어요. 만약 하얀색을 원하시면 주문을 하셔야 합니다. ' 수리기사는 나에게 덧붙여 말했다. as가 안되는 건가, 잠시 생각했지만 업무용 노트북이다. 이 노트북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한, 나는 아무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노트북을 들고 돌아다닐 일도 없을 것이므로 나는 급한 대로 검은색 충전기를 사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후, 한 달 전에 다친 흉터를 진료받기 위해 사무실에서 상담을 마치고 조금 일찍 퇴근을 하여 피부과로 향해가려는데, 갑자기 1003번 2층 버스가 크게 사고를 당하여 3거리 길목에 정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차의 앞면은 박살이 났고 버스는 흉한 몰골로 길 한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도로는 이미 파편으로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갓길에 서 있고, 경찰관이 우회전을 하려는 차량을 향해 운전 지도를 하며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도대체 버스와 어떻게 하면 이 정도로 심하게 부딪힐 수 있을까?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으로 미뤄볼 때 사고는 내가 이 길목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왜인지 모를 기묘함을 느끼며 그 자리를 바로 빠져나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가장 친한 친구와 전화를 했다가 그녀가 며칠 전 부친상을 당하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즘은 아무도 부르지 않고 가족들로만 장례를 치르기도 해. 그래서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어.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아버지와 20년 넘게 만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아무런 지병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난 어떤 것도 더 읽어낼 수 없었으며 나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이후 통화를 하기로 했다.
피부과에 들러 검진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쓰는 skt가 오늘 해킹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문득 오늘 하루의 일들로 인해 답답함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무엇인가 기묘하고 안좋은 일들의 집합체가 오늘 하루를 겨냥하여 한꺼번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남은 테니스 레슨을 받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나는 여전히 주로 등산복을 입고 레슨을 받으러 나가고 있다), 테니스화와 라켓을 챙겨 자전거를 탔다. 나는 진지하게 계속해서 날아오는 테니스 공을 열심히 쳤다.
+ 덧붙여
1. 최근에 나는 주로 낯선 곳에 머물고 있는데, 그전의 나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우선, 나는 낯선 곳에 원래 오래 있을 수 없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완전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또는 그런 상황이 이미 (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두 가지 가능성은 삶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단지 가능성만으로 낯선 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2. 원래부터 타인에게, 또 세계에 크게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공격에 취약한 나의 특성 덕분에 나는 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왔다. 지금도 그런 성향은 그대로지만 나는 이제 나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 질투, 시기 등 여러 가지 관심과 감정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든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며, 그곳이 불편해지면 조용히 떠날 생각을 하고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마음들은 평온함에서 비롯된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다.
3.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것에 몰입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이런 가능성, 가능성에 새롭게 집중을 하고 결핍이 사라지는 것,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완전한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예전과 달리 나의 방황에 종말을 구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