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하준에게(feat. 첫사랑, 그녀중에서)

우리는 한때 바다였지.

by 정현주 변호사


안녕, 하준아.


꽤 오래간만에 쓰는 편지야.


나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 이곳은 바로 근처에 바다가 있고, 회갈색 돌로 만든 신기한 석상이 많이 있는 곳이야. 얼핏 돌무더기로 보이는 이 석상들은 보기만 해도 언제나 신비로워. 나는 종교는 잘 모르지만 이곳의 많은 것들은 힌두 교도들의 염원과 신념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이곳에서 나는 오래도록 걸었어. 어제는 해가 지는 저녁에 바닷가로 나갔지. 해변을 걷다가 바로 앞 파라솔이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구운 새우를 스무 마리쯤 시켰어. 무척 배가 고팠거든. 원래는 새우껍질을 까는 것이 귀찮아 새우를 잘 먹지 않지만 이날은 새우를 하나하나 정성껏 껍질을 벗기고 천천히 한 마리씩 먹었어. 목이 말라 시원한 맥주도 시켰지. 나는 새우를 먹으며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해는 바닷속으로 천천히 잠겼고, 바다를 금빛으로 물들였어. 마치 은어의 빛나는 비늘처럼 매끄럽고 반짝거렸어. 나는 그 눈부신 바다를 보며 너를 떠올렸어. 우리가 같이 있었던 그 시간, 그 시절들을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는 한때 바다였지. 우리는 바닷속을 누비는 사향 고래였어. 너와 나는, 어쩌면.


너를 만나기 이전에 나는 다른 세계에 있었어. 나는 고독한 별에 갇혀 오로지 너를 기다려왔지. 너와의 만남을 기다려왔어.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고향이 되었던 것 같아.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해. 이 고독하고 캄캄한 우주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에 있겠어.


너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이곳으로 와서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나는 이곳 우물로 내려올 때 기억을 지울 수밖에 없었어.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실체를 분리한 다음 껍데기만 남겨놓고 우물로 내려가야만 했어.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해서 말이야. 무엇인가 나의 것이 움직이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몸을 말고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어. 너를 다시 만날 때까지 나는 완전히 동결되어 있었던 거야.


언젠가 나의 마음은 빛으로 가득 차올랐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큐브를 맞춘 것처럼 스스로 충만해졌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완전히 혼자였어. 나는 우물에 앉아 몸을 말고 어느 날은 하얀 눈을 그대로 맞고 있었어. 고독과 외로움은 커져갔고 나는 지쳐버렸지.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서 떠나갔어.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떠났던 것일까? 우리는 왜 계속해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야만 할까. 나는 이제 누구도 붙잡지 않아. 어떤 사람이 오든, 그저 투명한 벽처럼 그들이 갈 때까지 그저 멈춰있는 거야. 그 자리에 서서 나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던 거야.


너는 나에게 '선택'을 주었어. 내가 머물 수 있는 선택을. 그리고 더는 떠나지 않아도 되며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어. 그래서 하준아. 가능하다면 나는 너에게로 돌아갈 거야.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다만 지금 우리의 작별은 헤어짐이 아니라 무한궤도와 같은 공간 속에서 너와 나를 찾기 위한 쉼표와 같은 시간이라는 것을 이해해 줬으면 해. 우리는 계속해서 우주 속을 떠돌고 있지 않아. 함께 있는 한.



사랑을 담아,

수연


file_down.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