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없는 나, 들숨에 사라진 너.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내면에 있던 빛을 조금씩 다듬어 내보이고 싶을 때마다 표현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어떨 때는 그 욕망이 무척 커지거나 또는 급속도로 작아질 뿐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지를 묻기도 했다. 글을 쓰는 것은 매일 아침 일어나 밥을 먹는 것처럼 나에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치지 않고 차오르던 샘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은, 단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이 상황에 대하여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혀보기로 하자. 삶은 일정 주기로 변하는데, 우리는 그 시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지만 이후의 방향에 대해서까지는 알 수 없다. 이를테면 결혼을 하거나 취직을 하는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어느 정도 선택이 가능하지만, 그 일이 일어난 이후 내 삶의 모습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취직을 할 때 누구도 이직을 어느 때 할 거란 구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결혼을 하면서 이혼을 고려할 만큼의 구체적인 마음의 변화를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인연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나의 본질성을 자각하고 끊임없는 샘을 알게 되는 것처럼, 어떤 인연의 결과는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는다. 상황적인 절망이라고 해도 캄캄한 어둠 속에 던져진다. 익숙하지 않는 어둠, 혼자인 나는 우물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등지고 내 삶의 적대적인 편에 서서 허무를 받아들이며 중대한 결정은 회피하기로 결정한다.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진취적이며 밝고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내가 벌린 몇 가지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만 겨우 신경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그것은 참혹한 인내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물에 내려간 나는 오래전 나를 일깨웠던 헤세의 글귀나 말러의 교향곡과 같은 음악으로도 위로를 받지 못한다. 오래간만에 한국에 상륙한 뭉크의 그림 같은 것들은 이제 굳이 찾아가 볼 정도의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익숙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잘 모르는 곳, 그 누구도 기대할 수 없는 곳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을 보낼 정도로 이 세계에서 멀어져 있다.
동시에 나는 어떤 인연에게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나의 변화를 문득 깨닫는다. 우물에서 나온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이 회피의 진취적인 결론인지, 어쩌면 회피를 끝내고 나를 대면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깨달음이 될지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 세계에서 조금 더 멀어지기로 마음먹고 내 마음속의 방을 정리한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나의 의식 속에서만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 사이에 어떤 이들이 내 옆에 머물고 떠날지를 굳이 나는 결정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마음을 열고 피상적으로만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다.
그렇다. 몇 개월 전, 나는 잘 나오던 만년필의 잉크가 떨어진 것을 불현듯 깨달은 것처럼 글의 동력(動力)을 잃었다. 하지만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졌다. 강렬함을 잃었고, 그루 누이처럼 무향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멀어지면서 불필요한 잔불과 같은 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에노시마에서 돌아오며. 찬 바람을 맞으면서 그 긴 다리를 건너가면서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대로.
길을 걸을 때면, 내쉬는 숨마다 널 생각했다. 족히 십 년은 그랬다. 나는 너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지난 인연에 대한 한탄을, 메마른 침을 삼킬 때마다 찌푸리던 너의 왼쪽 속눈썹을, 더운 여름날의 아지랑이를 볼 때마다 떠올렸다. 너의 아름다움은 존재의 유일한 마지막 기억처럼 심장 어딘가에 아로새겨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오래도록 걸었다. 나의 일을 시작하기 전, 서성이던 외국의 거리에서 나는 돌아올 길을 잃고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인연의 나비효과는 알 수 없는 지점에서 끝나버리는 것이다. 나는 명백하게 그 사실을 알았다. 조금씩, 어쩌면 천천히.
시간을 엿처럼 길게 늘이고 늘려 실처럼 만든 것 같은 날이다. 나는 구름이 걸린 산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나는 숨 쉬는 모든 공간에 너가 사라져 버렸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방에 누워 눈을 감고 생각을 멈추었다. 그날, 나는 늦게 일어나 오이와 토마토를 넣은 샐러드를 먹고 천천히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호밀로 만든 깜빠뉴도 먹었다. 창문 밖으로는 길게 늘어진 해가 거실의 가운데까지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다. 무겁게 감긴 눈꺼풀 사이로 최근 다시 꺼내놓은 피아노 악보가 보인다. 시간이 멈춰버린 오후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듯한 긴 하루였다.
이 더운 공기와 늘어진 해는 오래전 나의 여행길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일종의 슬픔과 함께 밀려왔다. 나는 그때 낯선 길을 걸며 힘들어했다. 낡은 트램을 타고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나 스스로를 무향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지치는 방황 길은 내 안의 빛나는 무엇인가를 마멸하고 닳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 마음을 점차 소멸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낡은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너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메마른 잉크가 담긴 펜을 언제까지고 쓸 수도 없다. 다만 이 현상은 늘 그렇듯이 세계가 닫혀야 그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쓸 수 없는 나, 들숨에 사라진 너.
우리는 이제, 어디로 향해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