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감정을 충실히 즐기고 다시 돌아가면 된다.
나는 이별노래를 참 좋아했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한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을 뜨거워지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무척 슬플 것 같았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날리는 것을 보며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그렇게 홀로 앉아
슬픈 감성에 빠지길 좋아했다.
사랑에 대한 낯간지러운 문장을 보며 콧웃음을 치고
방금 이별하고 온 사람처럼
먹먹한 가슴을 상상하며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왠지 모를 분위기 있는 가련한 여주인공의 모습처럼
사춘기가 지나며 사랑에 대한 감정을 알아가며
나는 그 '사랑'에 중독되었다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도
열광하고, 격분하고, 슬퍼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마음이 참 신기했다.
풋풋한 여중생의 짝사랑이 끝나고
여고생이 된 후에도 난 늘 비련의 여주인공을 동경했다.
그리고 상상 이별을 하며 홀로 눈물 흘리기를 좋아했다.
그렇게라도 울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런 일련의 행동을 어떤 성스러운 의식인 양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살았지만 혼자가 편했다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나는 늘 어떤 생각했다.
주제가 딱히 있는 것도 큰 고민도 아닌 그런 생각들을...
그러다 내가 상상이 아닌 처음으로
사람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
이성친구가 생긴 것!
정말 신기하게도,
그동안 간지럽게 느껴졌던 유치한 사랑노래들과 시적 표현들이 좋아지게 되었다..
그 친구의 사소한 말, 표정,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우울하고 행복을 반복했다
가끔은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더 많이 좋아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하늘을 날 듯 기뻤다
풋사랑은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신중했고 처음이기에 모든 것이 서툴렀다.
사랑노래도 이별노래도 모든 노래들은 어떻게 내 마음을 이리 잘 아는 지 신기하기만 했다.
사랑을 할 때만은 이별노래를 듣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 '사랑'에 충실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이별노래'를 듣지 않았지만
가끔 상대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때면 슬며시 '이별노래'를 떠올리곤 했다.
이별은 늘 생각만으로도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별은 생각만큼 슬프지 않게
아주 덤덤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어린 날, 이별노래를 들으며 촉촉하게 만들었던 내 감수성도
나이를 먹고,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만 같다.
가을바람이 부는 저녁, 문득 이별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무런 슬픔도 없이, 그저 좋은 노래 가락으로 흥얼거린다.
가을이 오면 가을의 노래, 겨울이 오면 겨울 노래.
또 봄이 오면 봄에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다.
나는 지금은 이별노래를 듣지 않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이별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거나 슬퍼할 누군가에게
그냥, 전해주고 싶다.
진짜 다 괜찮아진다.
미리 걱정할 필요도, 미리 슬퍼할 필요도 없이
지금 딱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간에만 슬퍼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슬프면 슬픈 대로 실컷 울고,
기쁘면 기쁜 만큼 크게 웃으면 된다고
흔들리는 갈대처럼
그때는 조금 흔들리고 흩날려도
괜찮은 거라고,
다들 그런 거라고
살다 보면, 이별노래보다 유치하게 느껴졌던 트로트(뽕짝)가 좋아지기도 한다고
"내 나이가 어때서..." 라며
유치하게 춤추며 노래할 수도 있을 거라며
2019년 가을 어느 날의 일기.